복음전도 & 복음

복음이란 무엇인가?

Article
06.13.2014

최근에 복음주의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어떻게 규정해야 하는지를 놓고서 많은 논의가 있어 왔다. 우리가 복음을 죄인들이 회개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 메시지로 이해하든, 아니면 더 넓은 의미로 이해하든, 어쨌든 그런 논의가 진행되어 왔다. 때로는 두 진영 간에 의견이 대립되는 양상을 보였다. 한편에서는 상대 진영이 복음에 대해 “환원주의적임”을 지적했고, 다른 한편에서는 상대 진영이 복음을 희석시키며 교회로 하여금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을 간과하게 한다며 반격했다. 

나는 우리가 몇 가지 사항을 주의 깊게 고찰함으로써 이 같은 혼란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고 본다. 나는 이들 두 진영이—복음이란 하나님이 예수님의 대속적 죽음을 통해 죄인들을 자신과 화목하게 하신다는 좋은 소식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들을 “A”라 부르자)과 복음이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온 세상을 새롭게 하며 개조하실 거라고 하는 좋은 소식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들을 “B”라 부르자)이- 각기 상대방이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말하고 있다고 본다. 달리 말해서, 나는 A와 B가 같은 물음에 대답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두 진영 모두가 자신들이 “복음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답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주의를 기울여 보면, 우리는 그들이 실제로는 두 개의 서로 다르되 동일하게 성경적인 물음들에 대답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 두 가지 물음들은 이러하다. 

  1. 복음이란 무엇인가? 달리 말해서, 사람이 구원을 얻기 위해 믿어야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2. 복음이란 무엇인가? 달리 말해서, 기독교의 좋은 소식 전체는 무엇인가?

A가 “복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을 때, 그들은 “사람이 구원 얻기 위해 믿어야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라는 뜻으로 이해하며, 죄인들을 대신하신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 회개하고 믿으라는 부르심 등에 대해 말함으로써 이에 대답한다.

B가 “복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을 때, 그들은 “기독교의 좋은 소식 전체는 무엇인가?”라는 뜻으로 이해하며, 그리스도를 통해 세상을 새롭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목적에 대해 말함으로써 이에 대답한다.

이들 양측이 왜 서로 긴장상태에 있는지를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 만일 우리가 새 창조에 대해 말함으로써 물음 (1)에 대답하면, A는 그 대답이 너무 광범위하기 때문에 십자가를 중심에서 밀쳐내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성경 속에서 어떤 사람이 “내가 구원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고 물었다면, 그 대답은 장차 오는 새 창조에 관한 내용이 아니라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였을 것이다.

하지만 때때로(심지어 종종) 성경은 새 창조라는 측면에서 ‘복음’에 대해 말하기도 한다. 따라서 죄인들을 대신하신 그리스도의 죽음만을 말함으로써 물음 (2)에 대답하는 것은, 그리고 다른 모든 것은 복음이 아니라고(단지 연관된 것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 편협하다. 그것은 몸의 부활, 유대인과 이방인의 화해,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다른 많은 것들이 성경에서 제시하는 기독교의 “좋은 소식”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셈이다. 

우리는 이들 두 가지 물음 중의 어느 것도 그릇되지 않음을, 그리고 이들 중 어느 것도 다른 것보다 더 성경적이지 않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성경은 이들 두 가지 모두에 대해 묻고 대답한다. 여기서 나는 앞에서 언급한 두 가지 물음들 모두가 적법하며 성경적인 이유를 성경을 통해 보여주고자 한다.

성경은 ‘복음’이라는 말을 두 가지 서로 다른, 그러나 밀접하게 연관된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때로는 매우 넓은 의미로, 즉 죄 사함은 물론이고 죄 사함으로 인해 비롯되는 다른 모든 것들을(하나님 나라의 확립, 새 하늘과 새 땅 등을 포함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성취하시려는 모든 약속들) 묘사하기 위해 사용한다. 그런가 하면, ‘복음’을 매우 좁은 의미로, 즉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과 그분의 부활을 통한 죄 사함을 특별히 묘사하기 위해 사용하기도 한다. 그런 경우에는, 더 넓은 의미의 약속들은 그다지 고려되지 않는 것 같다.

다음은 성경에서 ‘복음’이라는 말을 좁은 의미로 사용한 사례들이다.

1. 사도행전 10장 36-43절: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그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베드로는 자신이 전하는 복음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화평의 복음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는 복음을 특별히 가리킨다.

2. 로마서 1장 16-17절: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바울은 믿음을 통해 계시된 하나님의 의와 ‘구원’이라는 측면에서 복음을 규정한다. 여기서 바울이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말미암는 죄 사함(칭의)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것이 로마서 전반에 걸쳐 분명해진다. 로마서에서 그의 초점은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에 맞춰진 것이 아니라 어떻게 그 나라의 일원이 되는가에 맞춰져 있으며, 바울은 그것을 ‘복음’이라 부른다.

3. 고린도전서 1장 17-18절: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바울이 보내심을 받아 전하는 복음은 “십자가의 도”이다.

4. 고린도전서 15장 1-5절: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마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고린도 교인들에게 바울이 전한 복음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이다. 다시 살아나신 예수께서 거듭하여 나타나신 것이 ‘복음’의 일부로 간주되어선 안 된다. 우리가 베드로에게, 열두 제자에게, 그리고 야고보에게 예수께서 나타나신 것을 전하지 않으면 복음을 말하지 않은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 언급들은 부활이 실제적이며 역사적인 사건임을 확언하기 위한 것이다. 

‘복음’이라는 말이 넓은 의미로 사용된 경우는 다음과 같다:

1. 마태복음 4장 23절: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이는 마태복음 기사에서 ‘복음’이라는 말이 처음 언급된 것이며, 따라서 여기서 우리는 이 용어의 의미와 관련한 윤곽을 엿볼 수 있다. 예수께서 전하신 “천국 복음”의 내용을 보완하려면 “천국”을 처음 언급한 17절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거기서, 예수님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라고 설교하셨다.

예수님이 전하신 천국 복음은 a) 천국이 다가왔고 b) 회개하는 자들이 거기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는 메시지였다.

2. 마가복음 1장 14-15절: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니라.”

 첫 구절을 제외하면, 마가복음 기사에서 ‘복음’이라는 말이 여기서 처음 사용된다. 예수께서 선언하신 “하나님의 복음”은,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였다.

하나님의 복음은 a) 하나님의 나라가 다가왔고 b) 회개하고 믿는 사람은 거기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는 메시지이다.

3. 누가복음 4장 18절: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이것은 예수께서 공적 사역의 출발점으로 삼으신 구약성경 구절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여기서 ‘복음'(복된 소식)이라는 말은 이사야 61장에서 사용된 것처럼 하나님 나라 통치의 온건한 확립을 가리킨다.

4. 사도행전 13장 32-33절: “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니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38절에서는 바울이 전한 복음이 “이 사람”을 통해서 얻는 죄 사함임을 분명히 밝힌다. 그러나 32-33절에서 ‘복음’은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루게 하신 약속이다. 조상들에게 주셨고 예수님 안에서 성취된 하나님의 약속은 죄 사함을 포함하되 이것에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이처럼 신약성경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복음’이라는 말이 넓은 의미로도 사용되고 보다 좁은 의미로도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넓게는 마태복음 4장, 마가복음 1장, 누가복음 4장, 사도행전 13장에서처럼,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약속들을 가리킨다. 죄 사함은 물론이고, 부활, 하나님과의 화목과 다른 사람들과의 화목, 성화, 영화,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 새 하늘과 새 땅 등에 대한 약속을 포함한다. 이 경우에, ‘복음’은 그리스도의 삶과 사역을 통해 보장되는 하나님의 복합적인 약속들 전체를 가리킨다. 우리는 이 넓은 의미에서의 복음을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라 부를 수 있다. 좁은 의미에서는, 사도행전 10장, 로마서 전체, 고린도전서 1장과 15장에서 보듯이, ‘복음’이란 예수님의 대속적 죽음과 그분의 부활 그리고 회개하고 그분을 믿으라고 하는 초청을 특별히 가리킨다. 우리는 이 좁은 의미에서의 복음을 십자가의 복음이라 부를 수 있다. 

이제 다른 두 가지 사실들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첫째, ‘복음’이라는 말의 넓은 의미는 좁은 의미를 당연히 포함한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의 사례를 보라.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과는 달리,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시작을 선언하기만 하신 것이 아니다. 그는 하나님 나라의 시작을 선언하시고, 거기 들어가는 방편도 선언하신다. 자세히 보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라고만 선언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라고 선언하셨다. 이것은 복음과 비복음 간의 결정적인 차이이다. 하나님 나라와 새 창조의 시작을 선포하되, 거기에 들어가는 방법, 즉 회개, 그리스도와 그분의 대속적 죽음을 믿음으로써 죄 사함 받는 것 등에 대해서는 선언하지 않으면, 이것은 비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사실, 그것은 나쁜 소식을 전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새 창조에 속하게 될 소망을 전혀 제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천국 복음은 단지 천국을 선언하는 것이 아니다. 천국 선언과 아울러 회개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거기 들어갈 수 있음을 선언하는 것이다.

둘째, 신약성경이 그리스도를 통한 죄 사함에 관한 좁은 의미의 메시지를 ‘복음’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만일 그리스도를 통한 죄 사함만을 전하고 세상을 새롭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를 전하지 않는 것은 복음을 전하는 게 아니다”라는 식의 주장은 옳지 않다. 바울과 베드로 둘 다, 만일 그들이 예수님의 대속적 죽으심을 통한 죄 사함에 대해 전했다면 ‘복음’을 전했음을 기꺼이 인정했을 것이다. 

만일 신약성경이 ‘복음’이라는 말을 넓은 의미와 좁은 의미 둘 다로 사용한다면, 우리는 이들 둘 간의-천국 복음과 십자가 복음 간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이것이 그 다음 물음이며, 일단 우리가 그 물음에 답하면, 몇 가지 참으로 중요한 물음들에 대한 더 분명한 답을 찾기가 쉬워질 것이다.

그러면 천국 복음과 십자가 복음은 어떻게 연결될까? 천국 복음이 필수적으로 십자가 복음을 포함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앞에서 이미 언급했다. 하지만 보다 구체적으로, 십자가 복음이 단지 천국 복음의 일부인가, 아니면 그 이상인가? 전자는 후자의 핵심인가, 아니면 주변적인 것인가, 그 중심인가, 아니면 다른 그 무엇인가? 신약성경 기자들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한 죄 사함이라는 특정한 약속에 ‘복음’이라는 말을 적용하는 반면에 넓은 의미의 복음에 포함되는 다른 약속들에는 ‘복음’이라는 말을 적용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들이 서로 화목할 수 있게 된 것이 내 복음이다”라는 바울의 말을 성경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십자가 복음이 천국 복음의 단순한 일부가 아님을 깨달음으로써 이 물음들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오히려 십자가 복음은 천국 복음의 문이며 원천이며 씨앗이다. 신약성경 전체를 읽어보라. 그러면 당신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한 죄 사함을 받지 않고서는 천국의 각종 축복들을 받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이 그 분명한 메시지임을 곧바로 알게 된다. 그것은 다른 모든 샘들의 원천이다.

성경 기자들이 전체 패키지(용서, 칭의, 부활, 새 창조 등)를 ‘복음’이라 부르면서 그 원천적인 메시지도 ‘복음’이라 부르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넓은 의미의 복음의 축복들이 좁은 의미의 축복들(속죄, 용서, 믿음, 회개)을 통해서만 얻어지기 때문에, 그리고 전자가 후자를 통해 반드시 얻어지기 때문에 신약성경 기자들이 문/씨앗/원천이 되는 약속을 ‘복음’이라 부르는 것은 너무나 적절하다.

또한 신약성경에서 그 원천 약속을 ‘복음’이라 부르고 넓은 의미의 다른 개별적 축복들을 ‘복음’이라 부르지 않는 것도 너무나 적절하다. 따라서 우리는 사람들 간의 화해를 ‘복음’이라 부르지 않는다.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해서도 ‘복음’이라 부르지 않는다. 하지만 속죄를 통한 용서를 ‘복음’이라 부르는 것은 그것이 다른 모든 축복의 원천이며 문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도출되는 몇 가지 중요한 사항들이 있다. 

첫째, ‘복음’이 천국을 선언하는 것이라는 주장은 옳지 않다. 복음은 천국 선언이 아니라, (넓은 의미에서) 천국과 아울러 거기 들어가는 방법까지 선언하는 것이다. 

둘째, 십자가 복음이 복음이 아니라거나 복음보다 못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물음이 “구원받기 위해 믿어야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가?”라는 것인 한, 십자가 복음은 복음이다. 예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고 바울과 베드로도 그렇게 말한다.¹⁾ 

셋째, 천국 복음이 복음의 덤 또는 복음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말하는 것 또한 옳지 않다. 물음이 “기독교의 좋은 소식 전체가 무엇인가?”라는 것인 한, 천국 복음은 복음의 덤이 아니라 복음이다. 예수님도 그렇게 말씀하시고 바울과 베드로도 그렇게 말한다. 

넷째, 어떤 사람이 단지 선한 일을 하고 “예수님의 본보기를 따른다”고 해서 그를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옳지 않다. 그리스도인이려면, 천국의 축복에 참여하는 사람이려면, 먼저 문을 통과해야 한다. 문이란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나아가고 죄 사함을 받는 것이다. 천로역정에서 번연은 크리스천이 천상의 도성으로 가는 길에 만난 형식주의자와 위선자의 특성에 대해 말한다. 잠시 대화를 나눈 후에, 크리스천은 그들이 좁은 문을 통과하지 않고 벽을 넘어 길로 나섰음을 알게 된다. 결론은, 현재 이들이 아무리 잘 나아가더라도 이들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님을 따르며 천국 삶을 산다고 자처하는 자라도 회개와 죄 사함에 대한 믿음으로 예수께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그들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이런 사람들이 많다. 어떤 사람이 외관상 예수님처럼 살 수도 있지만, 속죄와 믿음과 회개의 좁은 문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그리스도께로 나아가지 못한다. 그는 벽을 넘었을 뿐이다. 

다섯째, 비그리스도인들이 “천국 사역”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나는 믿는다. 사람들 간의 화해나 정의를 위해 일하는 비그리스도인은 선한 일을 하고 있지만, 그것이 천국 사역은 아니다. 왜냐하면 천국의 왕의 이름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는 C.S. 루이스가 틀렸다. 타쉬(Tash)의 이름으로 선한 일을 하고서 아슬란이 행복해할 거라고 기대할 순 없다. 

여섯째, 그리스도인 개인이 행하는 것이든 교회가 행하는 것이든, 모든 선량한 사역의 궁극적 목표는 세상 사람들에게 좁은 문을 가리키는 것이어야 한다. 이 사실을 올바로 이해하면 강력한 선교 동기를 얻게 되며 세상에 대한 증인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게 된다. 예컨대, 당신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발소를 쇄신할 경우에, 당신은 이발소 주인에게 이런 식으로 말할 필요가 있다. “내가 이렇게 하는 건 아름다움과 질서와 평화와 같은 것들에 관심을 지니신 하나님을 섬기기 때문입니다. 사실 성경이 말하고 내가 믿는 바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언젠가는 이 세상을 재창조하시고 페인트가 벗겨지거나 나무들이 죽지 않는 나라를 세우실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장님은 거기 속하지 못하실 것 같습니다. 죄 때문입니다. 사장님이 회개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한 그러합니다.” 그런 다음에 당신은 그에게 십자가 복음을 알려주어야 한다. 만일 당신이 이발소를 쇄신하고서 다가오는 천국을 선언한다면, 복음 선언에 미치지 못한다. 천국 복음은 천국과 거기 들어가는 방법을 함께 선언하는 것이다. 

일곱째, 앞에서 설명했듯이, 소위 이머징 교회들은, 그들의 복음이 놀라운 것이라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복음에 관한 진정 놀라운 것을 완전히 놓치고 있다. 예수님이 왕이시며 사랑과 긍휼의 나라를 도래하게 하셨다는 것은 전혀 놀라운 소식이 아니다. 모든 유대인들도 언젠가 그런 일이 일어날 것임을 알고 있다. 복음의 정말 놀라운 사실은 메시아 왕께서 그분의 백성을 위해 죽으셨다는 것이다. 다니엘서의 인자, 다윗의 후손인 메시아, 그리고 이사야서의 고난 받는 종이 동일인으로 밝혀지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그것은 천국 복음과 십자가 복음이 결합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단순한 왕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한 왕이시다. 이머징 교회에서 제시하는 놀라운 복음은 전혀 놀라운 것이 아니다. 지겨운 것일 뿐이다. 

여덟째, 지금까지 언급한 모든 내용은, 이 시대의 복음전도적, 선교적, 목회적 강조점이 십자가 복음(더 넓은 의미인 천국 복음의 문이요 원천인)에 놓여 있다는 결론으로 이끈다. 따라서 우리가 그것을 주목하게 하지 않는다면 나머지 모든 것은 나쁜 소식이며 도달할 수도 없는 것이 된다. 뿐만 아니라, 이 시대의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이 최우선적으로 명하시는 말씀은 “회개하고 믿으라”이다. 실제로 복음(넓은 의미의 복음이든 좁은 의미의 복음이든) 자체 속에 포함된 유일한 명령은 “회개하고 믿으라”이다. 이것은 이 시대의 모든 이들에게 부여된 주요 의무이며, 따라서 우리의 설교에서도 주요 강조점이어야 한다.

 

 1. 예수께서 그분의 기록된 말씀 중에서 ‘복음’이라는 말을 명시적으로 십자가 복음과 연결시키지는 않으셨지만, 그분은 매우 분명히 십자가 복음을 전하셨다(예, 막 10:45). 일반적인 측면에서 단어 연구는 유익하지만, 우리가 복음을 규정하고 성경 본문 속에서 복음에 대한 내용을 찾을 때 ‘복음’이라는 단어 자체에 너무 집착해선 안 된다. 그럴 경우에는, 요한은 복음에 대해 결코 말하지 않은 셈이 된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기록한 신약성경 책들에서 그 단어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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