멤버십 & 권징

회심의 집단적 요소

Article
02.29.2012

만일 우리의 회심 교리가 집단적 요소를 놓치고 있다면, 그것은 본질적 부분을 간과하는 것이다. 언약의 머리되시는 분은 언약 백성과 함께 찾아 오신다. 

먼저는 수직적 관계이며, 수평적 관계는 불가분적이면서 두 번째이다 

이는 우리가 집단적 요소를 최우선적으로 여겨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N. T. 라이트는 칭의가 “구원론이기보다는 교회론에 대한 것, 구원에 대한 것이기보다는  교회에 대한 것”이라고 말했다(『What Saint Paul Really Said』, 119). 그의 견해는, 더글라스 무가 말했듯이, 신약 성경이 배경으로 삼는 것을 전면으로 내세우며 신약 성경이 전면으로 내세우는 것을 배경으로 삼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D.A. 카슨의 “Faith and Faithfulness”에서 인용함). 

먼저 죄인들 개개인이 하나님과 화목하지 않고서는 사람들 간에 참된 화목은 있을 수 없다. 수평적인 것은 수직적인 것에 반드시 수반되기 마련이다. 교회론은 구원론에 수반되기 마련이다. 다시 말해, 집단적인 요소가 먼저 와서는 안 된다. 그러면 전체적인 것을 놓치게 된다. 

하지만 집단적인 요소를 누락해서도 안 된다. 사실 집단적인 요소는 회심 교리 자체의 구조 안에 남아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집단적인 연합은 그저 회심의 결과물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회심의 일부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의 백성과의 화목은 하나님과의 화목과 구별되지만 결코 분리될 수 없다. 

때로는 회심에 대한 우리의 교리적 논의의 범위가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의무 간의 관계, 회개와 믿음의 필수성 등의 주제를 넘어서지 못함으로써, 회심의 역학(mechanics)을 강조할 때 집단적 연합에 관한 시각은 실종되어 버린다. 그러나, 회심에 대한 충분한 이해는 우리가 어디로부터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도 포함해야 한다. 회심한다는 것은 사망으로부터 생명으로, 어둠의 영역으로부터 빛의 영역으로 이동함을 수반한다. 또한 그것은 사람들을 기피함으로부터 사람들에게 속함으로, 길 잃은 양으로부터 양떼에게 속함으로, 몸에서 떨어져 나간 상태로부터 몸의 지체인 상태로 이동함을 수반한다.

이 내용과 평행을 이루는 베드로의 언급에 주목하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벧전 2:10). 

긍휼을 입음은(수직적 화목) 백성이 됨과(수평적 화목) 동시적이다. 하나님이 우리 죄를 사하심으로써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시며, 이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로 우리는 그의 백성에 포함된다. 

언약들의 집단적 성격 

사실, 회심의 집단적 요소는 성경에 나오는 언약의 구조를 보는 것만으로도 파악될 수 있다. 모든 구약 언약들은 아브라함의 씨(단수)를 통해 성취된다. 예수님은 새 이스라엘이시다. 하지만 새 언약을 통해 그리스도께 연합된 모든 사람도 하나님의 이스라엘과 아브라함의 씨들(복수)이 된다(갈 3:29; 6:16). 

달리 말해서, 언약의 머리이신 주님이 언약 백성을 세우신다(롬 5:12 이하 참조). 새 언약에 속하는 것은 한 백성에 속하는 것이다. 

따라서 새 언약에 대한 구약 성경의 약속들이 한 백성에게 주어진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31:34). 새 언약은 죄 사함을 약속하며(수직적), 또한 형제 공동체를 약속한다(수평적). 

에베소서 2장에서의 수직적 측면과 수평적 측면 

이들 두 가지 측면이 에베소서 2장에서 잘 드러난다. 1-10절은 죄 사함과 하나님과의 수직적 화목을 설명한다: “너희는 은혜로 인해 구원을 받았다.” 그런 다음에 11-20절은 수평적인 측면을 제시한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14절). 

14절의 행동이 과거시제로 표현되었음에 주목하라. 그리스도께서 이미 유대인과 이방인을 하나로 만드셨다. 여기에는 명령법이 나오지 않는다. 바울은 독자들더러 연합을 추구할 것을 명하고 있지 않다. 직설법으로 말하고 있다. 그것은 그들의 현재 상태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 일을 행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수직적 화목을 이루신 바로 그곳에서, 즉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그 일을 이루셨다(또한 에베소서 4장 1-6절에 나오는 직설법과 명령법의 관계도 보라). 

그리스도의 새 언약 덕분에, 집단적 연합이 회심과 관련된 직설법이 된다. 회심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되는 것이다. 우리의 새로운 정체성은 교회적인 요소를 담고 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교회적인 사람들로 만드셨다. 

이 사실을 이해하는 쉬운 방법이 있다. 엄마, 아빠가 고아원에 가서 양자를 입양해서 집에 데리고 오면, 그 아들을 다른 형제자매들과 함께 가족 식탁에 앉힌다. 아들이 되는 것은 형제가 되는 것과 같다. 아들 됨이 먼저 오지만, 형제 됨이 필수적으로 뒤따른다. 말하자면, 회심은 가족사진에 포함되게 한다. 

개인적인 적용: 교회에 합류하라

이 진리를 우리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간단하다. 교회에 합류하라!

여러분은 의로워졌다. 그러니 의롭게 살라. 여러분은 주님의 몸의 지체가 되었다. 그리니 실제 몸에 참여하라. 여러분은 하나가 되었다. 그러니 실제적인 그리스도인 그룹과 하나가 되라. 

집단적인 적용: 회심의 역학(mechanics)을 올바로 이해하라

이 진리를 우리의 교회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앞서 언급한 회심의 역학을 교리적으로 올바로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이라는 두 개념 모두를, 그리고 회개와 믿음이라는 두 개념 모두를 원한다. 여기서의 불균형은 균형잡히지 못하고 뒤죽박죽으로 혼동된 교회를 초래한다. 회심이라고 하는 냄비에 넣은 것이 교회라고 하는 수프가 될 것이다. 

만일 회심 교리에서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강력한 개념이 결여되면, 우리의 설교와 복음 전도는 반응을 조작해내며 이를 통해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 될 위험에 놓인다. 그리고 리더십에 대한 접근법은 더 실용주의적인 것이 되기 쉽다. 과부하가 걸린 스케줄로 인해 우리 자신과 우리의 회중이 탈진할 위험이 있다. 우리의 멤버십이 이름뿐이며, 어떤 혜택이나 이득을 위한 것으로 전락할 것이다(마치 컨트리 클럽처럼). 우리의 책임성과 권징은 거의 사라질 것이다. 거룩을 잃게 될 것이다. 이 외에도 열거할 사항들이 많다. 

만일 우리의 회심 교리가 인간의 책임이라는 강력한 개념을 결여하면, 우리는 교인들의 은사는 물론이고 자신의 은사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할 가능성이 더 많아진다. 우리는 복음 전도와 설교 준비에 있어 자기만족에 빠지기 쉬울 것이다. 상처받고 있는 자들을 향한 사랑과 긍휼을 보이는 일에 더 소홀해지기 쉬울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냉혹하거나 무책임한 모습을 보일 수 있다. 우리는 기도 부족으로 어려움에 봉착할 수 있으며, 얻을 수 있었던 축복들을 모조리 놓칠 수도 있다. 우리는 사랑을 결여할 것이다. 이 외에도 열거할 사항들이 많다. 

만일 우리의 회심 교리가 회개의 강력한 개념을 결여하면, 우리는 구원의 확신을 성급하게 제시할 것이며, 그리스도를 따르는 대가를 미리 각오하도록 당부하는 일을 태만히 할 것이다. 교회 안에서 세속성과 분열성을 용납할 가능성이 더 많을 것이다. 교회 멤버들이 이것들을 용납할 수 있는 것은 그들 중 다수의 믿음이 얄팍한 데 머물러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은혜가 싸구려로 전락할 것이기 때문에, 명목적 신앙이 더 흔해질 것이다. 일반적으로, 교회는 구주로서의 그리스도를 찬양하기는 좋아하지만 주님으로서의 그리스도를 찬양하기는 그다지 좋아하진 않을 것이며, 이는 세상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일 것이다. 

만일 우리의 회심 교리에 믿음의 강력한 개념이 결여되면, 우리의 교회에는 염려하고 자기 의에 사로잡혀 있으며 사람을 기쁘게 하는 율법주의자들로 가득할 것이다. 자기 수련을 통해 자기 기만적으로 자신을 선하게 여기는 교회 멤버들이 더 많아질수록, 훈련이 덜 된 멤버들은 줄곧 자신의 은밀한 죄를 조용히 감추고 자신을 정죄하며 다른 이들을 원망하는 법을 줄곧 배울 것이다. 투명성이 드물어지고 위선이 흔해질 것이다. 외부인들과 탕자들은 참된 은혜의 온기와 긍휼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문화적 기호들은 율법과 혼동될 것이다. 교회는 왕이신 그리스도의 행군을 노래하길 좋아하지만 그들을 위해 피 흘리며 죽임당하신 어린 양에 대해서는 그다지 노래하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나는 대략적으로 말하고 있다. 이런 구분이 엄밀하게 적용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모든 사례들에서 기본적인 개념은 회심과 교회의 모습이 긴밀한 연관성을 맺고 있다는 것이다. 만일 회심이 반드시 집단적인 요소를 수반한다면, 혹은 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만일 개인적인 회심들이 반드시 연합된 공동체를 낳는다면, 우리가 회심 교리 속에 포함시키는 모든 것은 우리가 어떤 교회를 갖게 되는지에 극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당신은 건강한 교회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회심 교리를 정립하고 그것을 교인들에게 자세히 가르치라. 나아가, 당신 교회의 구조와 프로그램들이 이 다면적이며 강력한 교리와 조화되게 하라.

 

이 아티클은 개혁된실천사가 번역하여 제공한 것입니다. 유사한 자료를 위해 그들의 웹사이트를 방문하십시오.

더 많은 articles 태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