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신학

책을 읽기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성경은 너무 복잡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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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1.2015

나는 18세 내지 19세 때 책 읽는 법을 배웠다. 제대로 읽는 법을 배웠다는 뜻이다. 그 전에는, 내가 읽는 것이라곤 고작 식당의 메뉴나 TV에 나오는 미식축구 경기 결과 정도였다. 그러나 18, 19세 때 나는 어떤 책 한 권을 읽고서 정말 좋아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책 전체를 읽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존 오웬이라는 엄청나게 지성적인 멋쟁이의(그는 무릎까지 닿는 높은 가죽 부츠를 신고 머리카락에 왁스를 잔뜩 바르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소책자를 내게 선물했다. 나는 그 책을 한꺼번에 삼키듯이 읽었다. 후에, 지역의 기독교 서점으로 가서 이 저자의 책들이 더 있는지를 알아보았다. 나는 ‘그리스도의 죽으심 안에서 죽음의 죽음’(The Death of Death in the Death of Christ)이라는 책을 발견하고서, 그것을 사서 집으로 가져갔다. 

그 책의 첫 페이지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다. 

“독자들에게만일 당신이 이 책을 계속 읽어나갈 생각이라면, 여기서 잠시 멈추길 바란다. 만일 당신이 겉치레에 치중하는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처럼 간판이나 제목을 주시하는 사람이고 마치 카토(Cato, 로마의 정치가이자 군인-역자주)가 극장에 들어갔다 나가는 식으로 책 안으로 들어왔다가 다시 나갈 것이라면, 이미 나름의 만족을 얻었으니 이만 작별하자.” 

바꿔 말하면 이렇게 된다: “만일 당신이 멍청이 축에 속한다면 책을 천천히 내려놓고 물러서라.” “이미 나름의 만족을 얻었으니 이만 작별하자.” 나를 비웃는 오웬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다. “앤디, 포기해. 이 책에는 그림이 없어. 네가 읽기에는 너무 어려워. 너의 이해 범위 너머에 있는 내용이야. 가서 TV나 봐.” 그래서 나는 그 책을 덮고서 다시 읽지 않았다. 

내가 제시하는 물음은 이것이다: 이것은 성경에도 적용되는 사실인가? 성경은 단지 교수, 연구원, 학자, 또는 공부밖에 모르는 자들만을 위한 책인가? 존 오웬만을 위한 것이고 앤디 프라임을 위한 책은 아닌가? 설교자들만을 위한 것이고 교회 멤버들을 위한 책은 아닌가? 중산층만을 위한 것인가? 우리 이웃 사람들이나 빈민가 사람들을 위한 것은 아닌가? 성경은 너무 어려운가? 보통 사람들의 이해 범위를 넘어선 것이고 선택된 소수만을 위한 책인가? 

생명의 말씀 

신명기 30장 14절에 기록된 여호와의 말씀을 들어보라.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이 신명기 본문에서, 모세는 세 편의 긴 설교를 마치면서 깊은 숨을 내쉬며 하나님의 백성 앞에 서 있다. 분명 백성은 과중한 설교 내용에 압도되어 있었다. 하지만 모세는 30장 11-14절에서 네 개의 부정문을 포함하는 클라이맥스로 자신의 설교를 마감한다. 생명의 말씀은 

  • 너무 어렵지 않다.
  • 이해 범위를 넘어선 것이 아니다.
  •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다.
  • 바다 건너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말씀이 우리에게 너무 복잡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은 다가갈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실천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엘리트 연구원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단지 제사장이나 목사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알며 그분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신이 영적 슈퍼맨일 필요가 없다. 하나님의 말씀의 의미는 다수에게 감추어져 있지 않으며, 특출하게 명석한 자나 수백 권의 책을 읽은 사람들에게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모세는 30장 14절에서 말한다.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이것은 간단명료한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참으로 분명한 이유는 하나님이 그것을 참으로 가까이 두셨기 때문이다. 그것은 보고 듣고 만지고 알기에 충분할 정도로 가까이 있다.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가깝다”는 표현은 신명기의 앞부분에서도 나온다. 신명기 4장 5-8절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규례와 법도를 너희에게 가르쳤나니 이는 너희가 들어가서 기업으로 차지할 땅에서 그대로 행하게 하려 함인즉 너희는 지켜 행하라. 이것이 여러 민족 앞에서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 그들이 이 모든 규례를 듣고 이르기를 이 큰 나라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 하리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이 가까이 함을 얻은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오늘 내가 너희에게 선포하는 이 율법과 같이 그 규례와 법도가 공의로운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의 가까이 계심은 그분의 위대하심과 은혜를 보여준다. 무한하신 하나님이 유한한 사람들에게 자신을 알리셨다. 모든 지혜의 하나님이 우둔한 백성에게 자신의 선한 율법을 주셨다. 우주의 하나님이 미약하고 보잘것없는 백성을 만민의 부러움의 대상으로 삼으신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죄악된 사람들을 가까이 하신다. 

신명기의 문맥은 백성이 실패할 것을 모세가 알고 있었음을 알려준다. 사실, 그것은 예기되었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 명령을 순종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실패만 예측한 것이 아니라 약속도 맺고 있다. 신명기 30장 6절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라고 말한다. 율법에 대한 참된 반응은 슈퍼맨 같은 순종이 아니었다. 다만 미래를 위한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삶이었다. 하나님이 자신의 약속들 안에서 가까이 오셨음을 신뢰하는 것이 생명을 택하는 것이었다. 

그리스도의 말씀

구속사의 전 과정을 거쳐 성경의 뒷부분으로 빠르게 나아가보면, 당신은 로마서 10장에서 그 약속의 성취를 볼 것이다. 여기서 바울은 모세의 표현을 바탕으로 삼아서, 유사하지만 약간 진전된 관점을 제시한다. 하나님 말씀의 명료성으로부터 그리스도와 구원의 명료성으로 나아간다. 바울은 복음을 요약하기 위해 신명기 30장을 인용한다. 신명기 30장에서 율법을 입에 두고 그것을 마음으로 아는 것이 슈퍼맨만을 위한 것이 아니듯이, 로마서 10장에서 구원도 초인적 능력을 지닌 자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은혜가 그분의 말씀 안에 보이는 이유는, 그분의 말씀 안에서 우리가 구주를 보며, 과거에 주신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를 분명히 보기 때문이다. 로마서 10장에서는, 고해상도 카메라의 자동초점을 예수님에게 맞춘다. 당신은 하나님을 알기 위해 하늘로 올라갈 필요가 없다. 하나님이 그의 아들을 통해 내려오셨기 때문이다. 그분이 이처럼 가까이 오셨다. 당신은 구원받기 위해 깊은 곳으로 내려갈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이 무덤에 들어가셨다가 생명을 주기 위해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이다. 이처럼 분명해졌다. 

바울의 요점은 구원이 율법을 지키려는 우리의 격렬한 노력으로 얻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우리에게 너무 힘든 일이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주어진다. 우리는 슈퍼맨이 아니며, 슈퍼맨일 필요도 없다. 하나님은 신인(God-Man)이신 주 예수님을 통해 우리 가까이에 오셨다. 순종하신 예수님이 우리의 불순종으로 인해 저주를 받아 죽으셨다. 이것은 우리가 그분의 순종의 축복 안에서 살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그분 안에서 구원은 가까워지고, 우리의 도달 범위 안에 있고, 차별 없이 모든 이들에게 주어질 수 있다. 성경의 명료성이 중요한 것은 구주를 명확하게 증언하기 때문이다. 성경의 명료성이 영광스러운 것은 구주의 가까이 계심을 증언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 

이 사실이 사역에서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당신의 이웃사람들 중 대부분이 당신이나 나보다 독서를 더 많이 할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이들은 문맹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이 책 속에서 자신을 완벽하게 그리고 최종적으로 계시하셨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따라서, 글을 읽어본 적이 거의 없거나 읽고 싶어 하지도 않는 사람들, 성경을 읽어본 적이 없거나 읽고 싶어 하지도 않는 사람들을 대할 때에도, 우리는 성경을 펼 때 하나님이 가까이 하시며 예수님이 명확하게 증언되실 것임을 확신할 수 있다. 분명, 그들이 그리고 우리가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도 있을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성경 속의 모든 내용이 그 자체로서 똑같이 명백한 것은 아니다”라고 선언한다. 말하자면, 어떤 내용은 다른 내용보다 더 이해하기 힘들다. 사도 베드로조차도 바울의 글들 중 그런 내용이 많음을 인정한다. 그 내용들은 어렵지만 이해할 수 없는 건 결코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역은 말씀 사역이다. 우리의 임무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 선포되는 말씀 안에서, 그분의 성령으로 듣는 자들의 마음을 덮고 있던 수건을 벗기시고 듣는 자들의 눈에서 비늘을 제거하사 눈 먼 자가 보게 하신다.  

편집자 주: 이 아티클은 원래 20schemes 웹사이트에 게재되었던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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