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전도 & 복음

제자화를 위한, 복음전도의 여섯 가지 유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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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7.2012

“복음전도가 내 삶을 변화시켰어요.” 컨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택시를 잡아 타고 올랜도 간선도로를 달리던 도중에 존이라는 택시 기사가 내게 했던 말이다. 대부분의 택시 승객들과는 달리 내가 그곳에 간 것은 디즈니 월드 때문이 아님을 그가 알게 되었을 때, 우리의 대화는 신앙적인 방향으로 급선회했다.

“그게 무슨 뜻인가요?” 누가 어떻게 그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그의 입에서 나올 것을 기대하면서 내가 물었다. 하지만 그의 말은 그런 뜻이 아니었다. 자신의 복음전도가 그의 삶을 변화시켰다는 뜻이었다. 

그가 설명했다. “나의 믿음을 나누는 법을 배우고 나니, 대단히 많은 중요한 이슈들에 초점을 맞추게 됩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을 해나간답니다. 누군가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고 나면 결코 그 일을 잊지 않게 됩니다. 중단할 수가 없지요. 그와 같은 일은 없어요!” 

개인 전도가 그의 영적 활기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존의 간증은, 나 자신의 신앙 생활에서 경험했던, 그리고 청소년 사역자 및 교회 지도자로서 22년 동안 경험했던 모든 일들과 공진을 일으켰다. 

하지만 우리가 제자화와 복음전도를,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삶의 두 가지 분리된 측면들로 여기는 때가 얼마나 잦은가? 더욱 해로운 것은, 종종 우리가 제자화를 필수적인 것으로 여기면서 복음전도는 선택적인 것으로 여긴다는 점이다. 혹은 우리는 복음전도를 교회 내에서 가장 열정적이며 “영적 은사를 많이 받은” 사람들만을 위한 것으로 생각한다. 

모든 제자들은 복음을 전해야 한다 

그러나 신약성경은 그리스도의 모든 제자들이 성경공부와 기도와 공예배뿐 아니라 복음전도도 하여야 함을 알려준다. 새신자로부터 오래된 성도에 이르기까지, 복음을 나누는 일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하는 삶에 필수적이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제자를 삼으라”는 지상명령에 초점을 맞춘 설교를 듣거나 행한 적이 있을 것이다(마 28:18-20). 또한 우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그들 역시 제자 삼는 자들이어야 함을 가르쳐 왔다. 하지만 우리는 “제자 삼기”는 아직 제자가 아닌 자들을 제자가 되도록 돕는 일(복음전도)도 반드시 수반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예수님은 이에 대한 본을 보이셨고(막 1:14,15; 마 9:35), 사도들도 그리하도록 훈련시키셨다(막 6:7-13; 눅 10:1-12). 그리고 얼마 후에 예수님은 그들이 땅 끝까지 이르러 그분의 증인이 될 거라고 말씀하셨다(행 1:8). 

성령으로 충만해진 초대교회는 가족과 친구와 낯선 자들에게 일상적으로 그리고 정기적으로 복음을 전했음에 분명하다(행 2:42). 오순절 이후부터 구원 얻는 사람들이 매일 늘어났다(행 2:47). 복음전도는 부활하신 주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새로운 삶의 일부였다. 

복음전도의 유익 

복음전도를 제자화의 필수적인 부분으로 삼을 때 다음과 같은 여섯 가지 유익이 있다.

1. 복음전도는 우리의 삶과 교회에서 복음이 계속 중심이 되게 한다.

복음은 교회를 탄생시키고(골 1:5,6), 교회의 핵심 메시지이며(고전 15:1-3),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할 수 있게 한다(빌 1:6). 따라서 우리는 복음의 중심성을 유지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야 한다. 그것을 시야에서 사라지게 하기 위해 세상과 육신과 마귀가 모든 노력을 다 동원할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D. A. 카슨은 이르기를, 우리가 복음을 보존하는 한 가지 방법은 그것을 다른 이들에게 열심히 전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복음전도는 우리가 복음 메시지를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하는 삶의 엔진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2. 복음전도는 성경의 가장 근본적인 진리들을 더욱 깊게 이해하게 한다.

비그리스도인과 더불어 나누는 복음 대화는 하나님 말씀의 중심적이며 토대가 되는 진리들을 더 잘 파악하게 한다. 하나님의 성품, 그분의 거룩하심과 진노,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 죄, 은혜,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리고 심판과 같은 주제들에 더 초점을 맞추게 된다. 우리는 다양한 상황에 처한 다양한 사람들에게 이 개념들을 설명하는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또한 우리는 어떻게 이 진리들이 창세기로부터 계시록까지의 성경 전체를 함께 엮어주는지를 더 잘 배운다. 

제자화의 유익을 가장 분명히 알려주는 구절들 중의 하나는 빌레몬서 6절이다.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이르도록 역사하느니라.” 

무엇인가를 아는 것과 그것을 믿지 않는 사람(또는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설명하는 것은 별개이다. 이 소중한 진리들을 다른 이들에게 설명할 때 그것들이 우리 자신에게 더 분명해진다.

3. 적절한 동기로 행하는 복음전도는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성장시킨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을 전심으로 사랑하도록 요청받는다(막 12:28-31). 하나님과 사람들을 향한 사랑 때문에 우리의 믿음을 나누면 이 사랑의 불길이 더욱 거세진다. 적절한 동기로 행하는 복음전도가 그 반대의 결과를 가져오는 것을 나는 결코 본 적이 없다. 

만일 당신이 어떤 사람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한 적이 없다면, 나는 복음의 변화시키는 능력이 어떤 사람 속에 작용하는 것을 보는 기쁨을 당신에게 묘사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죄 때문에 다른 사람의 마음이 깨뜨려지는 것을 목격하면서, 내 마음은 내 죄로 인해 더 철저히 깨뜨려진다. 죄 사함의 자유 안에서 기뻐하는 다른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나 자신이 그 자유를 더욱 만끽하고 싶어진다. 어떤 사람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특권을 경험하면,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가 그분에 대해 생각하는 것보다 얼마나 훨씬 더 강하시고 거룩하시고 자애로우신지 상기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복음 소망의 메시지를 다른 이들에게 전할 때, 때로는 그들이 그 메시지를 거부할 것이며 우리도 거부할 것임을 그리스도께서 예고하셨다(요 15:18-21). 그런 일이 일어날 때, 죄로 인한 속박과 무지에 대해 내 마음은 더욱 깨어진다. 그리고 다가오는 심판을 더욱 절박하게 생각한다. 또한 나는 내 복음 메시지를 거부한 사람만큼이나 큰 죄인인 나를 하나님이 구원해주신 이유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4. 복음전도는 비그리스도인들의 예기치 않은 질문과 반대를 유발하며, 이것이 우리의 신앙을 더욱 깊어지게 할 수 있다.

나는 거의 10년 동안 중동에서 살고 있으며, 이슬람 교도들과 다른 비그리스도인들의 질문에 지혜롭게 대답하기 위해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그들과의 접촉은 내 믿음을 줄곧 강화시켰다. 

우리 회사 사무실 인근의 푸드코트에서 나는 오후에 이슬람 교도들과 친해지는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종종 우리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믿음의 주제들로 향하고, 나는 그 기회를 아용하여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것에 대해 설명해 왔다. 내가 그들의 질문에 항상 곧바로 대답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대답을 위해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의지할 때 내 믿음이 늘 강해진다. 내 믿음을 나누면서, 나는 반대 입장을 듣는 위치에 놓이며, 내 스스로는 결코 던지지 않았을 질문들에 대한 답을 발견한다.

5. 복음전도는 주변 사람들이 구원받았다고 하는 착각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준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은 성경적인 의미에서 제자가 될 수 없다. 그들은 경건함 안에서 성장하지 않고 할 수도 없다(롬 8:5-8). 

오늘날 교회가 처한 큰 위험은 자신도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거나 교회 활동에 참여하기만 하면 그 사람의 구원을 추정하는 것이다. 누구를 “거듭난 사람”으로 여길지에 대해 주의하지 않는 것은 종종 회심에 대한 비성경적 견해에 뿌리를 둔다(회심에 대한 9Marks의 아티클을 보라). 때로는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할까봐 두려워서 그가 참된 구원 신앙이 없을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말을 우리가 단념하는 때도 있다. 

그러나 복음을 매일 나누는 대화의 일부로 삼을 경우에,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을 것이다. 

씨 뿌리는 자는 씨가 어디에(길 가, 돌밭, 가시떨기, 좋은 땅; 막 4:2-8) 뿌려지는지를 고려하지 않는 것처럼 자유롭게 씨를 뿌린다. 우리 또한 차별 없이 넓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 그럴 때 주권자이신 하나님이 성도들을 격려할 뿐만 아니라 잃어버린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 그것을 적절히 사용하신다.

6. 복음전도는 복음을 위해 핍박당할 가능성을 높인다. 이 핍박은 우리를 성장시킨다.

이것은 마지막의 “유익”에 해당한다. 로마서 5장 3-5절을 생각해보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고난을 위한 고난을 추구해선 안 되지만, 우리는 복음을 위해 고난을 감수할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딤후 1:8; 롬 8:17). 사실, 복음전도로 인한 고난은 초대교회에게 그랬듯이(행 5:41) 우리에게 격려가 되어야 한다. 복음을 전하다 보면, 우리가 지혜롭지 못한 결단을 내리거나 불필요한 공격을 가해서라기보다 복음 그 자체 때문에 고난당할 것임을 분명히 알게 된다. 우리가 복음을 선언함으로 인해 고난당할 때, 고난의 주님을 바라봄으로써 우리의 믿음이 깊어질 수 있다. 

주의와 격려 

주의의 한 마디: 복음전도를 제자화의 일부로 추구할 때, 복음전도 프로그램들에 주의하라. 나는 복음전도가 “자연적이며 통상적”일 필요가 있음을 묘사해 왔다. 단지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차원에서 전도할 때, 우리는 신자들의 삶 속에서 행해지는 복음전도에 대한 성경의 묘사를 따르는 것이 아니다. 복음전도를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다루면, 그것이 제자화나 우리의 일상생활과 분리될 수 있다. 

아이의 자전거에서 보조바퀴들을 결국에는 제거할 필요가 있다. 마찬가지로, 보다 자연적이며 통상적인 삶의 구조 안으로 통합됨에 따라 마침내는 버려질 형식과 구조로 간주되는 한,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것은 괜찮다. 

끝으로, 당신의 회중과 당신의 그리스도인 친구들을 적극적으로 전도하는 사람으로 만들고 싶다면,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믿음을 나누는 담임목사와 장로들의 모습을 보게 하라. 그것이 그들에게 가장 큰 독려가 될 것이다. 사람들은 당신이 가장 열정을 보이는 것을 가장 잘 배울 것이다. 만일 당신이 목사로서 당신의 믿음을 나누는 일에 열정을 보이면, 회중도 자신의 믿음을 나누는 일에 열정을 보일 것이다. 또한 그들은 그렇게 하면서 예수님의 제자로서 자라갈 것이다. 

예수님은 지상명령에서 사도들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말씀하셨다(마 28:19). 제자 삼는 일을 수행할 때, 복음을 전하는 삶의 기쁨과 축복도 포함해서 주님이 명하신 모든 것을 가르치며 본을 보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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