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삶

우리가 제자화를 하지 않는 다섯 가지 이유(2부)

Article
08.22.2014

앞에서, 우리는 다른 이들을 제자로 삼아야 할 성경적인 근거를 살펴보았고, “우리가 주님의 이러한 명령에 순종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제기했다. 그리고 나는 “값싼 은혜”가 그 이유들 중의 하나임을 밝혔다. 

우리가 제자화를 하지 않는 다른 두 가지 이유 

우리의 제자화 활동이 그토록 미흡한 이유들을 두 가지 더 살펴보자. 

1. 교회들이 구도자에게는 민감하지만 신자에게는 무감각하다

먼저, 교회들이 구도자에게는 민감하지만 신자에게는 무감각한 점을 들 수 있다. 시카고에 있는 윌로우크리크 교회보다 구도자에게 민감한 예배를 모색하며 개발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온 교회는 없을 것이다. 그들은 30년 전에 처음으로 예배를 구도자들에게 맞추기 시작했다. 

그러나 2008년에 그들은 제자로 삼으라는 예수님의 명령을(마 28:19) 얼마나 효과적으로 수행했는지에 대해 4년에 걸쳐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그들의 결론인즉, 30년이 지나고 보니 구도자에게 민감한 예배로부터 신자들을 믿음 안에서 자랄 수 있게 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예배로(구도자에게 민감한 예배로부터 신자에게 민감한 예배로) 바꿀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윌로우크리크 교회가 (힘들게) 깨달은 것은, 우리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것이다. 만일 구도자를 기쁘게 하려는 데 항상 초점을 맞추면, 우리는 성장하는 제자가 아닐 것이다. 교회로서의 우리의 음식은 젖에 국한되며, 우리가 단단한 음식을 결코 먹지 않기 때문에 발육이 저해될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 수준을 결코 넘어서지 않는 신자들을 질책한다.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히 5:12-14). 

나는 외부인에게 초점을 맞추는 예배를 일회성으로 드릴 여지마저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예컨대, 성탄절 예배를 그렇게 드릴 수 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매주 그런 식으로 접근한다면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깊은 메시지를 듣지 못할 것이고, 그들의 제자화가 얄팍한 상태에 머물게 되고, 그 결과 그들은 다른 사람을 제자로 삼지 못할 것이다. 

신자에게 민감한 예배로 전환함에 따라 우리가 더 이상 비그리스도인들에게 메시지를 전하지 않게 될 것이라며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여전히 복음을 전할 것이다. 그리고 신자들을 보존하며 성장시키는 복음은 우리의 영적 걸음을 시작하게 했던 바로 그 복음이다. 

결국 신자들과 불신자들 모두를 위해, 매주 모든 예배에서, 그날의 성경 본문에 불문하고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 한다. 예수님은 전체 성경이 자신에 대한 증언이라고 말씀하셨다(요 5:39). 따라서 비록 이해하기 힘든 레위기 본문을 설교하더라도, 예수께서 하신 것처럼 설교하자. 그분 안에 있는 구속에 초점을 맞추자. 

물론, 만일 우리가 구도자에게 민감하려는 데 집착한다면, 신앙에 호의를 보이는 구도자들을 깜짝 놀라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레위기 같은 성경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설교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디모데후서 3장 16-17절에서 상기시키듯이, 이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달리 말해서, 우리는 제자화를 위해 성경 전체를 필요로 한다. 만일 비그리스도인들에게 거부감을 줄 염려 때문에 우리가 성경의 특정 부분을 무시한다면, 우리 제자화의 질이 현저히 떨어질 것이다. 

2. 우리 교회들 안에 회심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둘째, 우리 교회들 안에 회심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회심한 자들이 더 적다. 말하자면, 교회 내에 그리스도인들이 더 적으며, 그래서 서로를 제자화할 수 있는 사람들이 별로 많지 않다. 이렇게 된 이유들은 복잡하지만, 나는 두 가지를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예전에는 그리스도의 몸의 멤버가 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했다. 이것은 신약성경의 가르침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늘날의 많은 교회들에서는-심지어 크고 유명한 복음주의 교회들에서도-새신자 환영카드를 작성하는 것만으로 멤버가 될 수 있다. 그 사람이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인지를 영적으로 점검하고 확인해보려는 시도가 거의 없거나 전혀 없다. 자신이 제자가 아닌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을 제자화할 수 있겠는가? 

둘째, 교회 권징이 거의 사라졌다. 

교회 권징은 신약 교회의(적어도 순종하는 신약 교회의) 표준적인 관습이었다. 예컨대, 고린도전서 5장에서, 바울은 회개하지 않는 죄인들을 교회 멤버십에서 제외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바울의 이 명령을 지키지 않는 결과는 영적으로 치명적이다. 이 때문에 제자가 아닌 멤버들이 생겨난다. 사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적극적으로 대적하는 표지들을 보이며 주님과 그분의 복음을 크게 욕되게 할 수 있다. 자신이 제자가 아닌 자들이 다른 사람을 제자화할 수는 없는 일이다. 

왜 우리는 이런 두 가지 문제들을 무시하였나?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겠지만 주된 이유들 중 하나는 우리가 수효를 너무 중요시하여 수효를 늘릴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오게 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고, 그들을 교회 안에 머물게 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더 많이 팔기 위해 가격을 낮추는 상인과 같다. 

교회 멤버십과 권징에 대한 성경적인 실천사항을 무시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점차 비기독교화되고 소금과 빛을 상실해 가는 교회 문화가 조성되게 된다. 교회 멤버들 중에 제자가 아닌 이들이 너무 많을 경우에 제자화 문화는 불가능해진다. 그리고 제자화하지 않는 교회 멤버들이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하는 멤버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달리 말해서(마크 데버의 비유를 빌리자면), 예전에는 교회의 앞문을 조심스럽게 지키는 반면에 뒷문은 넓게 열려 있었다. 즉, 교회가 들어오는 사람들에 대해 주의를 기울였고, 자신의 신앙고백에 위배되는 삶을 사는 자들을 부지런히 징계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가 앞문을 넓게 열어젖혀 두는 반면에, 누군가가 나갈까봐 두려워서 뒷문은 단단히 닫아둔다. 

만일 우리의 마음상태가 이렇다면, 서글프게도 우리는 서로를 제자화하지 않는 회중을 보게 될 것이다. 

다음에, 나는 우리가 제자화하지 않는 네 번째 이유를 제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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