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삶

상호보완론이 제자화를 위해 매우 중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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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8.2015

상호보완론은 그리스도인의 제자화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 그 이유는 목사들과 교회들이 남자와 여자에게 기독교적 성숙에 관한 서로 다른 그림들을 제시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남녀의 제자화 개념을 균질화하거나 아니면 반대로 차이점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한 방향 또는 반대 방향으로 치우치기 쉽다. 하지만, 전체 성경에 충실하게 기초하고 있는 기독교적 성숙 개념은 같으면서도 서로 다른 남성의 성숙 모델과 여성의 성숙 모델을 제시할 것이다.

예컨대, 남성이든 여성이든 상관없이 모든 그리스도인은 회개와 믿음의 삶을 살 필요가 있다.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은 신자들 간의 친교에 연합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것이 주일학교와 가정 성경공부와 매주의 설교에서 그리스도인의 성숙에 대해 가르치는 내용의 전부라면, 그것은 하나님이 의도하신 남녀 간의 차이를 은연 중에 묵살하는 것이며 그래서 “성숙”을 잘못 전하게 될 것이다. 

다음 세 가지는 제자화를 상호보완적인(나는 이를 성경적인 것이라 믿는다) 방향으로 진행하도록 돕기 위해 필수적이다. (ⅰ) 성숙한 그리스도인 남성이 성숙한 그리스도인 여성과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신학적 시각; (ⅱ) 우리 교회에서 볼 수 있는 경건한 남성다움과 경건한 여성다움의 사례들; (ⅲ) 교회를 이 같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한 목회적 전략. 이 주제들에 대해 여기서 자세히 다루진 않을 것이다. 그 일은 다른 이들이 영감을 받아서 자세히 감당하길 나는 바란다. 다만 여기서는 그 일을 시작하기 위해 필요한 몇 가지 사실을 언급하고자 한다. 

서로 다른 영역들에 대한 신학적 시각과 구분 

이 논의는 제자화를 위한 상호보완론적인 신학적 시각으로 시작한다. 

우리 교회의 장로들은 결혼을 앞둔 커플들에게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 창세기 1장에 따르면, 남자와 여자 모두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이 땅에 실현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하지만 창세기 2장에 의하면 그들이 그렇게 하는 방식은 각기 다르다. 남자는 에덴동산을 향하는 반면, 여자는 남자를 향하며 남자의 적절한 조력자의 역할을 담당한다. 그녀는 자신의 모든 은사와 재능을 남자의 일을 증진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남자는 여자의 은사들이 사장되지 않고 최대한의 효과를 발휘하도록 선한 청지기처럼 그것들을 관리해야 한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권위적 구조를 갖는 관계를 이루는 결혼 안에서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는 것은 비교적 쉽다. 하지만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과 같이 남자에게 복종하도록 부름 받지 않은 교회 안의 독신 여성에게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 일터의 기혼 여성에게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 기혼 남성이 가정이나 교회나 일터나 혹은 공적인 자리에서 다른 여성들을 대할 때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성숙한 그리스도인 남성은 더 어린 남성이 이런 질문에 대답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며 성숙한 그리스도인 여성은 더 어린 여성이 이런 질문에 대답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주일학교, 소그룹, 또는 교회 성경공부 모임에서 이런 유형의 질문들이 제기될 수 있다.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에 관한 “신학적 관점”을 도출하기 위해, 우리는 창세기 2장이 다른 성경들과 어떻게 관련되는지 그리고 가정 영역과 일터 영역과 교회 영역과 공적 활동 영역의 특별한 구분들에 어떻게 관련되는지 숙고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동료 신자들더러 그 다른 영역들에서 단지 일반적인 그리스도인의 삶만이 아니라 남성다운 그리스도인의 삶과 여성다운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도록 도울 필요가 있다. 

한 영역의 예 : 지역 교회 

예를 들어, 지역 교회에서는 남자다움이 말씀을 가르치는 일과 결부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 남성은 말씀을 배우며 말씀 사역을 증진하는 일에 각별한 관심을 갖도록 가르침 받아야 한다. 교회에서 모든 남성이 가르치는 은사를 지닌 것은 아니지만, 모든 남성은 어딘가에서(예컨대, 가정에서) 가르칠 준비를 갖춰야 한다. 또한 모든 남성은 관리의 은사나 관계 형성의 은사를 지니고 있으며, 이를 교회에서 말씀 사역을 증진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예배가 끝나자마자 가족과 함께 서둘러 집으로 향하는 수동적인 남자들로 가득한 교회 대신에 말씀 사역을 증진하는 일에 앞장서는 남자들로 가득한 교회를 상상해보라. 설교로, 음악 사역으로, 어린이 사역으로, 교회 모임 후의 행사에서, 복음전도 사역에서, 외부인들을 보살피는 사역에서 그렇게 하는 남자들을 상상해보라. 그런 교회에서는 경건한 여성이 경건한 여성으로 생활하기가 더 쉬울 것이다. 

달리 말해서, 종종 여성들이 교회에서 주도권과 리더십을 보유해야 하는 것은 남성들이 그렇게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남성들이 씨를 뿌리고 땅을 일구는 등, 교회라는 동산에서 열심히 일하는 한, 그리스도인 여성들은 그 남성들을 도우면 된다. 그들은 훌륭한 남성들의 리더십을 따름으로써, 그리고 아이들이나 아래 연배 여성들의 삶의 영역처럼 남성들이 관여하기가 비교적 힘들 수 있는 영역들로 말씀 사역을 확대함으로써 그리한다.

나는 성경적인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이 한 영역-지역 교회-에서 어떻게 다르게 보이는지에 대한 한 가지 사례를 제시했다. 따라서 젊은 신자들을 지역 교회에 관여하도록 제자화할 때, 남녀 구별 없게 해서는 안 된다. 물론 공통적인 사항들도 있다. 예를 들어, 말씀 사역을 증진하는 일에 모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다른 사항들도 있다. 남성들은 주도권과 리더십을 가질 것을 배워야 하는 반면에, 여성들은 용이하게 하고 돕는 일을 배워야 한다. 

모든 영역에서-일반화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나는 생각한다-여성들은 경건한 남성다움을 추구하는 남성들 곁에 있을 때 경건한 여성다움을 더욱 잘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성들이 그리하지 않을 때, 종종 남성들은 자신을 탓해야 한다. 

목회적 전략 

신학적 시각으로부터 눈을 돌려 제자화를 위한 목회적 전략을 살펴보자. 교회 리더들은 아이들과 청소년 프로그램에서, 남성들의 사역과 여성들의 사역에서, 그리고 정규적인 설교 사역에서 성숙에 대한 이처럼 다양한 그림들을 가르쳐야 한다. 가르침은 교회 생활의 여러 영역들에서 행해지며, 그것들을 하나하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각 영역에서의 가르침이 획일적으로 남녀 공통적인가 아니면 성경적 차이점들이 장려되는가? 

가르침에 덧붙여, 교회 리더들은 교인들 가운데 성경적인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의 좋은 예들을 장려해야 한다. 어떤 종류의 남성들이 장로로서 인식되는가? 목회 기도 안에서 어떤 여성들이 공적으로 인정받는가? 중고등부 앞에 어떤 남성과 여성들이 역할 모델로 놓여지는가? 

상호보완론에 대한 논의가 어떤 경계선의 문제에 국한되어 더 발전하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나 잦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성인 여성들이 고등학교 남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적절한지와 같은 문제를 놓고서 혼란스러워 한다. 그 경계선이 어디에 있느냐고 그들은 묻는다. 하지만 무엇이 적법한지의 경계선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마치 데이트하는 남녀가 “우리가 서로의 신체접촉을 어느 정도까지 할 수 있을까요? 손잡기? 키스?”라고 묻는 것과 유사하다. 

이런 질문이 요구되는 경우도 있지만 제일 먼저 필요한 것은 성경적인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을 어떻게 장려할지에 대한 긍정적인 언급이다. 데이트하는 커플은 “우리가 서로 어느 선까지 신체접촉을 할 수 있을까요?”라고 묻기보다는 “우리가 어떻게 서로를 섬기며 결혼을 가장 잘 준비할 수 있을까요?”라고 물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교회에서 우리는 이렇게 물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이 고등학교 여학생들을 성숙한 여성이 되도록 그리고 이 고등학교 남학생들을 성숙한 남성이 되도록 가장 잘 도울 수 있을까?”

이 물음을 다시 생각해보자. 성인 여성들이 고등학교 남학생들을 가르쳐도 될까? 솔직히 나는 그것이 적법한지의 여부를 온전히 확신하진 않지만, 남성들이 교회에서 주도권을 지닌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그 고등학생들이 배우기를 나는 원한다. 또한 나는 고등학교 여학생들이 교회에서의 남성 리더십을 사랑하고 확언하며 지지하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배우기를 원한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 앞에 어떤 본보기를 둘지에 대해 매우 주의할 것이다. 나는 성경을 사랑하고 주도권을 취하는 성인 남성들더러 중고등부를 전체로서 가르치게 하고, 성숙한 여성들더러 그 사역을 지원하며 보조하게 할 것이다. 

상호보완주의와 제자화의 목표 

대체로 그리스도인의 제자화에서 상호보완성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상호보완성은 제자화에 어떤 목표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남성으로서 나는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다른 남성들이 리더와 주도자가 되는 것, 용기를 갖는 것, 보호자가 되는 것, 그리고 자신보다 더 약한 자들을 위해 희생하는 것 등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알도록 돕고 싶다. 그런가 하면, 내 아내는 자신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여성들이 지원자, 조력자, 용이하게 하는 자, 조언자, 팬(fan), 그리고 때로는 질책자 등이 되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알도록 돕기를 원한다. 

나는 남성들이 교회에서, 가정에서, 그리고 적절한 다른 어떤 곳에서 이렇게 하는 법을 알도록 돕고 싶다. 아내는 여성들이 교회에서, 가정에서, 그리고 적절한 다른 어떤 곳에서 그렇게 하는 법을 알도록 돕길 원한다. 

더 어려운 물음들이 그 후에 제기된다. 삶의 다른 많은 영역들에서 성경적인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은 어떤 모습인가? 그리고 우리가 제자화를 통해 이런 본보기를 장려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상호보완주의와 복음 

이러한 차이를 강조하는 것이 정말 그토록 중요할까? 그렇다. 하나님은 창세기 2장에서 이 차이를 피조세계에 내장시키셨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 모든 피조세계에 복음에 대한 그림이 담기게 하기 위해서였다. 나중에 바울은 이에 대해 이르기를, 남편과 아내가 서로의 사랑을 통해 복음의 그림을 제시한다고 했다(엡 5장). 그러므로 교회가 성경적인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에 대한 본보기를 제시할 때, 그것은 복음 이해를 용이하게 만든다. 

그런 본보기가 없다면, 마치 양이나 희생제사에 대해 전혀 들어본 적이 없는 정글 문화권에서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님을 묘사하길 원하는 성경 번역자처럼, 복음을 설명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복음을 미워하는 마귀가 복음에 대한 이미지들 중의 하나를 흐리게 하려고 남녀를 균질화하려 하는 건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당신이 제자화의 상호보완적 개념을 갖지 않아도 복음에 대한 믿음을 유지할 순 있지만, 그럴 경우에는 제자화에 대한 당신의 비전이 복음에 대한 믿음을 위하기보다는 해하는 방향으로 작동할 것이다.

편집자 주: 이 아티클은 원래 July-August 2010 Journal: Pastoring Women에 게재되었던 것이다.

 

이 아티클은 개혁된실천사가 번역하여 제공한 것입니다. 유사한 자료를 위해 그들의 웹사이트를 방문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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