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신학

무지한 자들과 의심하는 자들과 죄인들에게 설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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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5.2010

종종 나는 “강해설교에서 성경 본문을 어떻게 적용하세요?”라는 질문을 듣는다.

이 질문의 이면에는 여러 가지 가정들이 놓여 있을 수 있다. 질문자는 자신이 들은(혹은 설교한) “강해” 설교를, 즉 신학교에서의 성경 강의와 전혀 다르지 않은(잘 정돈되어 있고 정확하지만, 듣는 자의 경건을 촉구하는 내용이나 목회적인 지혜는 거의 담고 있지 않은) 내용을 생각할 수 있다. 이런 강해설교는 적용을 거의 담고 있지 않을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질문자가 단지 적용하는 법을 알고 싶어할 수도 있다. 

16세기의 위대한 청교도 신학자인 케임브리지의 윌리엄 퍼킨스는, 여러 부류의 청자들을(완악한 죄인들, 의심하는 자들, 지친 성도들, 열정적인 젊은이들 등) 생각할 것을 그리고 이들 각자에게 적용할 내용을 숙고할 것을 설교자들에게 가르쳤다.

퍼킨스의 조언은 매우 유용하지만, 나는 적용이라는 주제에 약간 다르게 접근하고자 한다. 청자들의 부류가 다양할 뿐만 아니라 적용의 종류도 다양하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의 한 구절을 취하여 명쾌하고 집요하게 설명할 때 최소한 세 종류의 적용이 있는데, 이는 그리스도인이 그의 순례 여정에서 직면하는 세 종류 문제들을 반영한다. 첫째, 우리는 무지의 어둠 아래에서 씨름한다. 둘째, 우리는 의심과 더불어 씨름한다. 종종 이 의심은 우리가 처음에 인식하는 것보다 더 심하다. 셋째, 우리는 죄와(직접적인 불순종 행위이든 죄악된 태만이든) 더불어 씨름한다. 설교자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마다 우리 자신 안에서 그리고 청자들 안에서 이들 세 가지 부문에서 긍정적 변화가 일어나길 원한다. 이들 세 가지 문제들에서 세 종류의 적용이 생긴다. 

무지

무지는 타락한 세상의 근본적인 문제이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다. 창조주와의 직접적인 친교로부터 단절되었다. 그렇다면, 사람들에게 하나님에 관한 진리를 전하는 것 자체가 강력한 적용 유형이다.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다.

이것은 냉담하거나 열정 없는 설교를 위한 핑계거리가 아니다. 나는 명령문만큼이나 직설법적 서술을 대할 때에도 열정이 일어난다. 회개하고 믿으라고 하는 복음의 명령은 하나님과 우리 자신과 그리스도에 관한 직설법적 서술을 떠나서는 무의미하다. 정보는 지극히 중요하다. 우리는 진리를 가르치며 하나님에 관한 위대한 메시지를 선언하도록 부르심받았다. 우리는 우리의 메시지를 듣는 사람들이 무지에서 벗어나 진리를 알게 되기를 바란다. 그런 진심어린 정보 제공이 바로 적용이다. 

의심 

의심은 무지와는 다르다. 의심하는 사람은 자신에게 친숙한 개념이나 진리들을 취하여 의문을 제기한다. 이런 의문은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드물지 않다. 사실 의심은 설교자가 철저히 조사하고 대처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들 중 하나일 수 있다. 의심에 대처하는 것은 비신자들에게 변증학적으로 대처하는 방식과는 다르다. 매주 설교를 들으러 오는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나 하나님이나 오네시모에 대한 설교자의 언급들을 모두 알고 있지만, 그 사실들이 진실임을 믿을지의 여부를 놓고서 씨름하고 있을 수 있다. 때로 어떤 이들은 자신의 의심을 인식조차 하지 못할 수도 있고, 자신이 의심하고 있다고 명확히 표현하지 못함은 물론이다. 

우리가 성경을 철저히 분석하기 시작할 때, 때로는 의문과 불확실함과 망설임이 마음속 어두운 곳에서 서성거리는 것을 발견한다. 이럴 때 우리는 서글프게도 신실한 순례의 길에서 우리를 멀어지게 하는 의심을 인식하게 된다. 이 같은 사람들에게, 어쩌면 우리 자신의 이런 마음에 대해, 우리는 하나님 말씀의 진실성을 옹호하여 그것을 믿게 하길 원한다. 우리는 청자들에게 하나님 말씀의 진실성을 역설하도록 부르심받았다. 우리는 우리의 메시지를 듣는 이들이 의심에서 돌이켜 전심으로 진리를 믿게 되기를 바란다. 이처럼 진리를 역설하는 설교가 곧 적용이다. 

 

죄 역시 타락한 이 세상 안에 있는 문제이다. 무지와 의심 자체가 특정한 죄들이거나 특정한 죄의 결과들일 수 있다. 하지만 죄는 분명히 무지나 의심 그 이상이다. 

당신의 설교를 듣고 있는 사람들 중에 지난주에 줄곧 하나님께 불순종했고 오는 주에도 거의 확실히 하나님께 불순종할 자들이 있다. 죄는 여러 가지일 것이다. 어떤 죄들은 작위의 불순종이며 또 다른 죄들은 부작위의 불순종일 것이다. 작위든 부작위든, 죄는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이다. 

설교의 일부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반영하는 거룩한 삶을 살도록 하나님의 백성을 독려하는 일이다. 따라서 어떤 성경 구절을 적용하는 방법의 하나는 이번 주의 행동에 그 구절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찾아내는 것이다. 설교자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을 권고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하도록 부르심받았다. 우리는 청자들이 죄악된 불순종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말씀에 계시된 그분의 뜻에 따라 그분께 즐거이 순종하기를 원한다. 이 같은 순종 권고가 곧 적용이다. 

복음

우리가 설교할 때마다 적용할 필요가 있는 주요 메시지는 복음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아직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또 어떤 이들은 한 동안 당신의 설교를 들으며 앉아 있었으나 마음이 흐트러지거나 졸거나 혹은 다른 이유들로 인해 주의를 집중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들은 복음을 들을 필요가 있다.

또 어떤 이들은 진리를 듣고 이해했으며 심지어 그것을 받아들였지만 당신이 전하는 메시지를 의심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리를 믿도록 촉구받을 필요가 있다.

복음의 진리를 듣고 이해했지만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일에 더딘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복음 메시지의 진리를 받아들이지만 자신의 죄를 끊고서 그리스도를 의지하길 원치 않는다. 그런 청자들에게 가장 강력한 적용은 죄를 미워하고 그리스도를 의지하도록 촉구하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설교에서, 우리는 정보를 제공하고 권고하며 촉구함으로써 복음을 적용해야 한다. 

우리 설교자들이 하나님 말씀을 적용하면서 흔히 직면하는 도전은, 특정한 문제를 경험하는 사람들이 우리의 설교에 그들의 그 특정한 문제가 언급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우리의 설교 안에 성경 적용이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생각이 옳은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우리가 모든 부류의 문제를 더 자주 그리고 더 철저히 언급하면 우리의 설교가 향상될 수도 있겠지만, 정보를 전달받을 필요가 있는 사람이나 죄를 버리도록 권유받을 필요가 있는 사람에게 그런 설교를 하는 건-설령 그들이 그 필요성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고 해도-잘못이 아니다. 

끝으로, 잠언 23장 12절에 주목해보라. “훈계에 착심하며(apply your heart to instructions) 지식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 영어 번역에서 “착심하며(apply)”라는 단어는 거의 항상 설교자의 일이나(설교학은 그렇게 가르친다) 심지어 성령의 일로(조직신학은 옳게 그렇게 가르친다) 언급되지 않고 말씀을 듣는 자의 일로 언급되고 있다. 우리 설교자는 말씀을 우리 자신의 심령에 적용하도록 그리고 그 일에 자신을 드리도록 부르심받고 있다. 

아마도 다음 주일에 모든 하나님의 백성의 유익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적용이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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