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삶

목회 성공에 대한 개념 재정립

Article
03.01.2010

저자이자 신학자인 데이비드 웰스는 1994년에 출간한 “God in the Wasteland”(<<거룩하신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부흥과개혁사에서 역간-편집주)라는 책에서 이렇게 썼다. “신학생들은 현재의 교회 상태에 대해 불만이다. 그들은 교회가 비전을 잃어버렸다고 믿으며 현재 교회에서 얻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얻기를 원한다.” 그러나 웰스도 동의하듯이, 불만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더 많은 어떤 것을 필요로 한다. 교회의 본 모습을 적극적으로 회복할 필요가 있다. 교회의 특성과 본질은 무엇인가? 교회를 구별되게 하는 표지는 무엇인가? 

교회 건강의 역사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의 표지들”에 대해 오래도록 얘기해 왔다. 교회라는 주제가 공식적으로 광범위하게 신학적 논의의 핵심이 된 것은 종교개혁에 이르러서였다. 16세기 전에는, 교회에 대한 논의는 별로 존재하지 않았고 교회는 그저 당연시되었다. 교회는 은혜의 방편으로, 그리고 나머지 신학 분야의 전제가 되는 실재로 여겨졌다. 그러나 16세기에 마르틴 루터 등의 근본적인 비판과 더불어, 교회 자체의 특성에 대한 논의가 불가피해졌다. 어느 학자가 설명하듯이, “종교개혁으로 인해 교회 조직 대신에 복음이 참된 교회의 시금석으로 대두되었다”(Edmund Clowney, The Church, 1995, 101). 

1530년에 멜란히톤은 아우구스부르크 신앙고백서를 작성했다. 이 고백서 제7조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교회는 성도들로 이루어진 회중(congregation)으로서, 복음에 대한 바른 가르침이 있고 성례들이 시행되는 곳을 가리킨다. 교회의 참된 일치를 위해서는, 복음에 대한 가르침과 성례의 시행에 관한 믿음의 일치를 갖는 것으로 충분하다.” 1553년에 토마스 크랜머가 작성한 영국교회의 42개조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들어 있다. “그리스도의 가견적 교회는 하나님의 순전한 말씀이 설교되고 성례들이 적절히 시행되는 곳으로서, 이것은 신실한 사람들로 구성된 회중이다.” 존 칼빈은 기독교강요에 이렇게 기록했다. “하나님의 말씀이 순전하게 설교되고 전해지며 또한 성례들이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시행되는 곳이면 어디에나 하나님의 교회가 존재한다. 우리는 이를 의심해서는 안된다”라고 썼다. 

벨직 신앙고백서(1561) 제29조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참된 교회임을 알게 하는 표지들은 다음과 같다. 복음의 순전한 교리를 설교할 것,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대로 순전한 성례 시행을 유지할 것, 죄에 대한 징벌로서 교회 권징을 행할 것, 간단히 말해서 모든 일들을 순전한 하나님 말씀에 따라 행하고 그 말씀에 반하는 모든 것들을 거부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교회의 유일하신 머리로 인정하면 그 교회는 참된 교회이다.” 

교회 창설과 보존 

이들 두 가지 표지, 즉 복음의 선포와 성례의 준수(이들은 각각 교회를 창설하는 것과 교회를 보존하는 것에 해당한다)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의 원천과 그것을 담아 드러내는 사랑스러운 그릇을 볼 수 있다. 교회는 올바른 말씀 설교를 통해 생겨나며, 교회는 올바로 시행되는 세례(또는 침례)와 성찬(또는 주의 만찬)을 통해 보존되고 구별된다(성찬의 표지 안에서 교회 권징이 행해지고 있다고 추정한다). 

분명 완벽한 교회는 없다. 그러나 불완전한 교회들 중에도 건강한 교회들이 많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건강하지 않은 교회들이 더 많다. 심지어 그리스도의 신성과 성경의 권위를 철저하게 확언하는 교회들 중에도 그러하다. 너무나 많은 교회들이 단지 관념적인 기독교, 명목상의 기독교, 옹졸함과 실용주의를 낳는 기독교 안에서 힘을 잃고 시들어 가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아홉 가지 표지들(nine marks, 건강한 교회를 위한 아홉 가지 표지로서 마크 데버가 그의 책 “건강한 교회의 9가지 표지”에서 주창한 내용-편집주)은 성경적인 설교와 성경적인 교회 리더십을 회복하기 위한 계획을 제시한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드리는 목적에서 벗어나 규모의 확장만을 목표로 삼는 교회들이 너무나 많다. 어떤 수단을 동원하든, 교회만 커지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 안에서 기독교는 광범위하게 그리고 급속도로 거부되고 있다. 또한 복음 전도는 종종 본질적으로 편협한 일로 간주되고 심지어 공적으로는 증오심에서 기인하는 범죄로 분류되기도 한다. 이러한 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세상이 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화는 복음에 대한 반감으로 너무나 철저히 얽혀 있어서 문화에 동화되기 위해서는 복음 자체를 포기해야 할 지경이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시대의 문화와 단절되지 않으려는 시도 하에서 문화에 순응하고 동화되어 버리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이런 시대에, 우리는 성경을 다시 보고, 성공적인 사역에 대한 개념 정립을 다시 해야 한다. 성공적인 사역이란 반드시 즉각적으로 결실을 내는 것보다는 하나님 말씀에 충실하게 사역해나가는 것을 의미한다는 개념을 확실하게 붙들어야 한다.  

우리는 새로운 모델을 필요로 한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교회 모델이 필요하다. 실제로, 우리에게 필요한 모델은 옛 것이다. 분명한 외부적 결과보다는 성경적 신실성을 보유하는 것을 성공의 핵심 요소로 여기는 교회들을 우리는 필요로 한다. 이 새로운 (옛) 교회 모델은 우리 교회들에서 기본적으로 필요로 하는 두 가지에 초점을 맞춘다. 그것은 메시지 선포와 제자 양육이다. “건강한 교회의 표지들” 중 앞의 다섯 가지는(강해 설교, 성경적인 신학, 성경적인 복음 이해, 성경적인 회심 이해, 성경적인 복음전도 이해)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설교하는 일과 관련된다. 뒤의 네 가지는(교회 멤버십, 교회 권징, 제자화와 성장에 대한 관심, 교회 리더십)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의 경계선들과 표지들을 올바로 세우는 법, 즉 제자들을 리드하는 법을 다룬다. 

이 모든 것의 목표와 목적은 하나님을 알리며 그분의 영광을 높이는 것이다. 역사의 전 과정을 통해, 하나님은 자신을 알리기를 원하셨다(출 7:5; 신 4:34-35; 시 22:21-22; 사 49:22-23; 겔 20:34-38; 요 17:26).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 모든 일을 행하신 것은 찬송을 받으시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는 것은 합당하며 선하다. 마크 로스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증언하는 피조물들 중의 핵심이다…교회와 관련한 바울의 큰 관심은(참조, 엡 4:1-16),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즉 하나님을 거역하는 마귀적인 세력들의 모든 비방들에 대항하여 하나님의 성품을 옹호하는 교회의 역할에 있었다…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의 영광을 교회에 맡기셨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은, 그들이 교회 지도자이든 아니든,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다. 우리는 하나님의 도덕성과 의로우신 성품을 온 세상에 반영하는 살아 있는 그림이어야 한다. 특히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연합됨으로써 그리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목적과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광이 아닌 그분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그분과 연합하도록 그리고 우리의 회중 속에서 연합하도록 우리를 부르신다.

편집자 주: 이 글은 Nine Marks of a Healthy Church (Wheaton: Crossway, 2000)의 서문에서 발췌하여 편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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