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삶

“네 가지 요소”를 놓고 공동으로 기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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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0.2016

우리 모두는 기도를 하기는 하되, 목적도 효력도 없이 기도하는 교회에 다녀본 적이 있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교회에서 하는 기도가 식사 기도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즉 의무적이고 또한 그렇게 하는 것을 모두들 존중하지만 그 기도를 통해 실제로 많은 도움을 받는 사람은 없다. 기도는 한 순서로부터 다음 순서로 전환하기 위한 최상의 도구 정도로 전락한다. 모두들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이게 하면, 찬양 팀이 무대 위로 오르내리는 모습이 어색해 보이지 않는다. 

기도는 핵심 순서인 주일 설교의 오프닝처럼 되었다. 그러나 19세기의 목사 E. M. 바운즈는 우리에게 이렇게 상기시킨다. “하나님을 위해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은 위대한 일이지만,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 아뢰는 것은 훨씬 더 위대한 일이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서, 내가 시무하는 코너스톤 교회에서는 기도를 중대한 일로 여긴다. 우리는 멤버들이나 방문자들이 강단에서 전해지는 설교나 찬양을 통해 하나님의 메시지를 듣기만 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 만일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자신을 관객처럼 느끼기 쉬울 것이다. 공예배의 목표는 그런 것이 아니다. 공예배는 인격적이면서도 참여적인 예배를 목표로 한다. 우리는 참석자들이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맺을 기회를 갖길 원하며,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결정적인 방안을 기도로 본다. 

교회에서 기도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한다. 하지만 어떻게 기도하는가가 다르다. 우리가 하나님과 관계 맺는 법을 가르치는 한 가지 방법으로서 공동 기도를 활용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 훈련을 통해, 우리가 일어나기를 바라는 일들은 세 가지이다. 첫째, 우리는 우리의 기도가 작은 문제들까지 다루기를 원한다. 둘째, 우리는 우리 중의 많은 이들이 간과하는 것들을 위해 기도하길 원한다. 예컨대, 정부 당국자들을 위한 기도 같은 것이다. 그리고 셋째, 우리는 중요한 기도를 반드시 긴 시간 동안 해야만 하는 건 아님을 보여주길 원한다. 많은 기도를 5분 안에 끝낼 수도 있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는 사람들이 기도하는 법을 당연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함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함께 모일 때 기도 내용에 “네 가지 핵심 요소”를 특별히 포함시키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경배 

경배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시간의 기초가 된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대화하는 것이 비할 바 없는 영예임을 마음속에 확립하길 원한다. 우리 중의 대부분은 기도에 너무 익숙한 나머지 하나님께 경박스럽게 다가간다. 우리는 예배의 시작부터 그런 태도를 제거하길 원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장엄하신 성품을-그분이 어떤 분이시며 자격 없는 인생들을 위해 그리스도 안에서 무엇을 하셨는지를-상기하길 원한다. 예수님의 크신 희생 덕분에, 우리는 담대히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아울러 경배의 기도는 우리가 그분께 겸손히 나아가야 함도 상기시킨다. 

죄 고백 

우리가 올바로 경배하고 있다면, 영혼에 반영되는 그 다음의 논리적인 단계로서 죄 고백이 뒤따른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묵상할 때 우리의 죄성이 뚜렷해지고, 그래서 우리는 죄를 고백하게 된다.

교회 가족의 한 멤버가 죄를 고백하는 것을 들을 때, “나도 그렇다”라고 생각하게 되기를 바란다. 종종 우리는 자신의 삶에서 죄를 작게 여기려 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죄 고백을 들으면서, 우리는 자신의 마음을 살피며 예전에 간과했던 죄들을 드러낼 용기를 얻는다. 이것은 낙심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주님에 대한 의존과 기쁨으로 이끈다. 왜냐하면 특히 죄를 고백하는 순간에 우리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선하심을 상기하기 때문이다(요일 1:9). 

올바로 행해진 죄 고백은 예배로 이어지게 한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 삶의 어두운 부분을 노출시키는 도전을 의미하므로, 우리가 그것을 거부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얻는 기쁨을 놓치는 경우가 너무 많다. 분명, 죄를 고백하는 기도는 진지하게 뉘우치는 것이 핵심이지만, 그 시간은 시편 32편의 다윗의 경우처럼 항상 기쁨으로 마감되어야 한다.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감사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인식한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주의하지 않으면, 이러한 인식이 진심에서 우러나는 감사로 하나님을 예배하려는 소원을 갉아먹을 수 있다. 

이 세상에는 부서진 부분이 많으며 우리는 그러한 부분들을 하나님이 고쳐주시기를 바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종종 감사가 불평에 대한 최선의 방비책임을 알고 있다. 주일의 모임들에서,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이 하신 일로 인해 그분께 감사하는 특별한 시간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부서지고 짓밟힌 심령은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말씀을 듣는 데 큰 방해가 될 수 있다(출 6:9). 따라서 감사의 기도를 통해, 우리는 감사할 것을 서로에게 상기시키길 원한다. 때로 우리는 우리더러 그렇게 하도록 당부할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한다. 요컨대, 우리는 세상에 존재하는 불행들을 인식하지만 하나님의 선하심을 간과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럴 때, 바울이 말하듯이,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할 수 있을 것이다(고후 6:10). 

간구 

교회 멤버들이 경배와 죄 고백과 감사의 기도로 우리를 인도하는 반면에, 우리는 목사로서 간구의 기도에 있어 선두에 서 이끌기로 결정하였다. 우리는 우리의 회중과 공동체가 하나님께 간구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의 영역을 넓히길 원한다.

사람들은 대체로 하나님을 대할 때 매우 좁은 영역에 한정되어 있다. 그들은 기도에 대해 생각할 때, 대개 하나님께 이것저것을 간구하는 것을 생각한다. 우리는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기도의 핵심 요소들을 사용하면서 간구할 것들을 언급하기를 소망한다. 

유사하게, 나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간구하는 내용의 범위가 매우 좁은 경향이 있음을 발견했다. 우리가 병든 사람의 치유를 하나님께 간구할 수 있고, 같은 기도를 반복할 수 있으며, 또한 “만일 이것이 주님의 뜻이라면”이라는 문구를 굳이 붙이지 않고서도 하나님께 간구할 수 있다. 물론, 주기도문을 따라, 우리는 다른 무엇보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그러나 서글프게도, 우리 중의 많은 이들은 우리의 삶에서 큰일들을 행하시려는 하나님의 소원과 능력을 의심한다. 교회로서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큰일들을 간구함으로써 그분의 위대하심을 드러내길 원한다. 그럴 때 하나님이 때로는 “안 돼”라고 응답하신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가족으로서 함께 성장하며, 하나님을 신뢰하게 된다. 그런가 하면, 하나님이 우리가 간구하거나 상상하는 이상으로 “그래”라고 응답하시는 때도 있다. 이럴 때에는 우리의 믿음이 강해진다. 

교회로서 우리는 예배가 독점적이지 않고 회중적이기를 원한다. 우리는 남녀노소가 예배 안에서 성경이 옹호하는 방식으로 인도해나가길 원한다. 또한 우리는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하나님께 아뢰는 다양성을 보이길 원한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한 이유는, 공동 기도가 우리 주일 모임의 핵심적 측면이기 때문이다. 우리 공동체와 심지어 방문자들도 기도하는 사람들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며, 그 와중에 짧은 시간 동안 의미심장한 기도를 여러 형태로 할 수 있음을 상기하게 된다. 우리는 모임 가운데 경배와 죄 고백과 감사와 간구라는 요소들을 포함시키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의 감정적 폭이 얼마나 넓어야 하는지 보여줄 기회를 갖는다. 

결론 

식당에서 웨이터에게 말할 때, 당신은 요구 사항만 전달한다. 만일 당신을 경탄하게 만드는 사람 앞에 있다면, 당신은 그에게 주로 칭찬의 말만 늘어놓을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반응 모두 관계가 피상적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들과 함께 하는 깊은 관계를 원하신다. 관계가 깊을수록, 교류는 더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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