멤버십 & 권징

꾀하고 부추기는 교회 멤버들이 당신의 교회에는 참으로 필요하다

Article
03.01.2010

만일 당신이 대부분의 목사들과 같다면, 가장 듣고 싶지 않은 말은 교회 공동체의 연합을 저해하는 일을 꾀하는 교회 멤버들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어떤 기관에서 봉사하든, 어느 반을 가르치든, 어떤 교제를 나누든, 그들은 줄곧 불평과 불만을 갖고 언쟁하도록 다른 사람들을 부추기는 것 같다. 

그런데 당신은 히브리서 기자가 교회 안에서 줄곧 꾀하며 부추기도록 교회 멤버들에게 당부한다는 사실을 알면 놀랄 수도 있다. 다만 그는 선한 일을 위해 꾀하며 부추길 것을 당부한다. 

켄터키주 루이스빌에 있는 우리 교회에서, 교회의 다른 장로들과 나는 히브리서의 가르침을 종종 회중에게 상기시킨다. 우리가 그들에게 말하는 내용은 아래와 같다. 

간단한 문맥 

히브리서의 대부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관한 신학 논문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무려 아홉 장에 걸쳐서 구약의 희생제사 제도와 제사장 제도를 두루 고찰하고 이 모든 것이 예수님의 삶과 죽음을 통해 성취되었음을 주장한다. 그러나 열 번째 장에서 이 모든 내용을 독자들의 삶과 연관시킨다. “이 모든 사실들에 비추어 볼 때 여러분은 이러이러한 특정한 방식으로 살아야 합니다”라고 말하는 셈이다. 

간략한 주해 

히브리서 10장 19-25절은 이 모든 권면의 중심에 놓여 있다. 이 구절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독자들에게 세 가지 일을 당부한다. 첫째,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라. 예수님이 십자가 죽음을 통해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보좌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하셨기 때문에, 그들은 두려움과 떨림으로써가 아니라 온전하고 기쁜 확신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둘째, 신앙고백을 굳게 붙들고서 물러서거나 무너지지 말고 믿음으로 그들의 영혼을 구원할 것을 당부한다. 이들 두 가지 권면을 통해 그들의 마음과 생각과 영혼을 줄곧 살필 것을 당부하는 것이다. 하지만 세 번째 권면도 여기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들에게, 즉 교회에 관심을 집중하라는 권면이다. 

24절과 25절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라고 말한다.

예수님이 행하신 모든 일 때문에, 그리고 그분이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사랑과 선행을 서로 격려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그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사랑과 선행을 서로 격려할 수 있을까? 본문에서는 두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즉, 함께 모이는 것을 무시하지 않음으로써 그리고 서로를 격려함으로써 그 일을 이루라.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라는 어구는 성경에서 그리스도인의 지역 교회 출석 의무를 가장 분명하게 언급한 구절일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라면, 우리는 자신의 삶을 지역 교회의 신자들과 함께 나누어야 한다. 이 구절의 의미는 더할 나위 없이 선명하다. 그러나 모이기를 폐하지 말라는 명령은 그 자체만 따로 떨어져서 제시되어 있지 않다. 그것은 주요 구절에 종속된다. 함께 모이라는 명령은 또 다른 목적의 수단으로 제시된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사랑과 선행을 서로 격려할 목적으로 함께 모여야 한다. 

출석하라 

그러므로, 적어도 우리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교회 모임 출석이 선택적인 것이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 히브리서 기자는-따라서 성령께서 친히-그리스도인들더러 자신이 속한 신자들 공동체가 모일 때 함께 참석할 것을 명령한다.

실천적으로 말해서, 이는 우리가 성도의 모임을 위한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 스케줄을 재조정해야 할 수도 있음을 뜻한다. 일 스케줄을 변경할 수도 있다. 숙제하는 시간을 변경할 수도 있다. 리포트를 더 일찍 또는 더 늦게 작성할 수도 있다. 대부분의 교회들에서는 일주일에 두세 시간 이하로 만난다. 나머지 시간 동안 다른 일들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히브리서에 따르면, 다른 신자들을 독려하고 고무시키는 것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최우선 순위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교회의 공적 모임에 참석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출석하기만 하진 말라 

히브리서 기자는 단순한 출석 그 이상을 요청한다. 그리스도인들이 교회 출석을 “그리스도인의 할 일” 점검 목록에 나오는 항목들 중의 하나로 간주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교회 예배에 참석하여 예배당의 뒷좌석에 조용히 앉아서 무덤덤하게 설교를 듣고 마지막 찬송을 부르는 시간에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고 빠져나가면서 “나는 교회에 출석했고 히브리서 10장 25절 말씀을 잘 지켰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히브리서 기자가 생각한 건 전혀 그런 것이 아니다. 그는 단지 “교회 출석”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다른 신자들을 알고 사랑하고 독려하는 의미에서의 교회 출석을 염두에 둔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는 상황을 생각한 것이다.

지역 교회의 공적 모임은 선포되는 하나님 말씀을 듣기 위해 모이는 것-이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긴 하지만-그 이상을 수반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서로를 지원하며 격려하기로 약속한 다른 신자들과 함께 삶을 나누는 것도 수반한다.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함께 울고 기뻐하며, 서로의 짐과 슬픔을 지고, 하나님 말씀을 함께 들으며, 또한 그 말씀을 서로의 삶에 적용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포함한다. 요컨대, 교회 모임은 신자들이 서로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꾀하고 독려함 

본문에서 주목할 것이 두 개 더 있다. 첫째, 히브리서 기자는 “어떻게 서로 사랑과 선행을 격려할지 고려하자(consider how to stir one another up to love and good works)”라고 말한다(한글개역개정 성경에서는 “고려하자”라는 말이 번역되어 있지 않음-역자주). 달리 말해서, 그 일에 대해 생각할 것을 당부한다. 그리스도인은 형제자매들에게 선행을 독려하는 법을 꾀하고 계획하고 궁리하고 노력해야 한다. 이는 자신의 삶이 다른 사람들의 삶과 긴밀하게 결부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알지 못하고서 어떻게 그들의 유익을 위해 계획하며 꾀할 수 있겠는가?

둘째, “격려하며”(stir)라는 단어에 주목하라. 영어성경 KJV와 NRSV는 이를 provoke(유발하다, 부추기다)로 번역한다. 단체 속의 한 개인은 다른 이들에게 가시적인 영향을, 사랑과 선행을 하려는 마음을 유발하거나 분발시키는 영향을 미쳐야 한다. 

요컨대, 우리 목사들은 교회 멤버들더러 선한 일을 꾀하며 부추기라고 격려하길 원한다. 

예시 

지난 여름에 나는 우리 집 현관 앞과 보도에 슬레이트 타일을 놓는 공사를 시작했다. 나는 푸른 색 이글루 쿨러에다 물을 가득 채웠다. 타일을 적절한 크기로 자른 후에 지저분해진 부위를 씻어내기 위해서였다. 얼마 후에 타일에서 떨어져 나온 찌꺼기들이 쿨러 바닥에 가라앉음에 따라, 물의 윗부분은 맑고 쿨러 바닥에는 두터운 찌꺼기 층이 쌓였다. 쿨러 바닥의 찌꺼기들을 바닥에서 떠올려 물에 두루 섞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했을까? 무릎으로 쿨러를 쳐도 소용이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 물결이 일겠지만 찌꺼기는 바닥에 딱 달라붙어 있었을 것이다. 그 찌꺼기를 떠오르게 하려면, 내 손을 물속에 집어넣어야 할 것이다. 의도적으로 그리고 직접 손을 넣어 찌꺼기를 휘저어야 했을 것이다.

이것은 완벽한 비유는 아니지만, 교회와 약간 유사한 면을 나타낸다. 예수 그리스도의 참 교회는 신자들이 한 주에 1회만 함께 모여 서로 마주쳤다가 각자 자기 일을 보러 떠나는 곳이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것을 교회 모임의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얼마나 창피스러운가! 이보다 더 교회를 무기력하게 만들거나 교회에서 일할 의욕을 잃게 만드는 것도 거의 없을 것이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는 무기력하고 지루한 권면이 아니다. 반대로 그것은 활기 찬 에너지로 가득한 삶을 당부한다.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살 것을, 즉 그들을 사랑하고 격려하고 선행을 독려하며 또한 그들로 하여금 주의 재림의 날을 항상 대망하며 살아가게 할 것을 당부한다. 단순히 “교회에 가는 것”(going to church)만으로는 부족하다. 오직 “교회로 존재하는 것”(being the church)으로써만, 비로소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그의 백성된 우리에게 의도하시는 것을 실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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