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삶

교회 일정에 정규적인 기도 예배를 추가해야 하는 네 가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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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1.2016

만일 당신이 교회 일정에 하나를 더 추가할 수 있다면, 무엇을 추가하겠는가? 여성들의 수련회인가 아니면 남성들의 조찬모임인가? 복음전도 세미나? 공동체 그룹모임들? 주일 오전예배 참석이 힘든 사람들을 위한 토요 저녁예배? 주중 성경공부? 

이것은 내가 지난 해 가을 새 교회에 부임한 이후로 거듭하여 자문했던 물음이다. 위의 제안들 중에 칭찬할 만한 것들이 많지만, 나는 장로들과 힘을 합쳐 정규 주일저녁 기도 예배를 시작하도록 교인들을 이끌었다. 

사실, 기도 예배란 전기가 들어오기 전에, 생활이 더 단순하고 교회가 더 작고 또한 자녀들의 여가 활동이 분주하지 않았던 때에 그리스도인들이 드렸던 예배와 같은 구식의 느낌을 갖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최소한 일부 교인들의 반대에도 직면했다. 한 멤버는 내게 말하기를, 이미 우리가 기도를 너무 많이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오전예배 때의 기도 시간들만으로도 이미 길다고 느꼈다. 그 시간들이 리듬감을 유지해야 하는 찬양 팀의 주의를 분산시켜서 예배를 어지럽힌다고 했다. 또 어떤 이들은 기도 예배가 교인들에게 또 하나의 의무감을 더 느끼게 함으로써 율법주의를 조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동의 기도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소그룹을 포기하는 이들도 나올 수 있기 때문에 기도 예배가 공동체에 방해가 될 수 있음을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면, 공동 기도에 전념하는 모임을 가져야 하는 주된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네 가지 이유를 제시하고자 한다. 

1. 교인들에게 기도의 중요성을 상기시킨다 

교인들을 어떤 행사에 참여시키거나 소그룹에 속하게 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우리 교회에서 최근에 실시한 여성 수련회에 수백 명이 참여했다. 남성들의 조찬모임에도 많은 인원이 모였다. 그런데 함께 모여 기도하는 일에는 많은 사람들이 떨떠름해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왜 많은 교회들에서 기도 예배를 다이얼식 전화기처럼 구식으로 간주될까? 

간단히 말해서, 기도는 매력적이지 않다. 재미를 주는 것이 아니다. 종종 그것은 쉽거나 편하지 않다. 노력과 수고를 요한다. 그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가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않도록 누가복음 18장에서 과부와 재판장 비유를 말씀하셨다. 우리는 음악과 대중매체와 팟캐스트와 설교처럼 숟가락으로 떠먹여주는 것들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기도는 세상 생각을 끊고 내면으로 향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단지 개인적으로가 아니라 집단적으로 함께 해야 할 일이다. 마태복음 21장에서, 예수님은 성전을 시카고 상품거래소의 매매 입회장 같은 곳으로 만든 사람들을 꾸짖으신다.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라고 말씀하신다(마 21:13). 신약 성경에 따르면, 교회는 하나님의 성령의 전이다(고전 3:16). 그러면 과연 우리 교회는 하나님이 의도하시는 기도의 집인가? 우리는 기도 시간을 따로 떼어놓는가? 함께 기도에 몰두하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는가? 아니면 우리의 공동 기도는 찬양들 사이를 채우는 것에 불과한가? 

로버트 머레이 맥체인은 “사람이 홀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있을 때의 모습, 그것이 바로 그의 참 모습이다. 그 이상은 없다”라는 유명한 말을 했다. 우리 교회에 동일한 기준을 적용해보면 어떻겠는가? 우리는 어떠한가? 공동 기도는 교인들에게 기도의 중요성을, 그 절대적 필요성을 각인시킨다. 우리의 싸움은 영적 세력들에 대한 것이며 따라서 영적 무기들을 필요로 한다. 그렇다면, 단 한 사람의 기도가 아닌 수십 명, 수백 명, 혹은 수천 명의 기도보다 더 강력한 무기가 무엇이겠는가? 

2. 기도하는 법에 대한 본보기를 교인들에게 보여준다 

내가 공중 앞에서 처음 기도했던 때가 기억난다. 나는 새 신자였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당혹스러웠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했을까? 다른 사람들의 기도 내용을 듣고서 그대로 따라했다. 

다니엘이나 바울이나 한나나 마리아의 기도를 공부하지 않는 한, 교인들이 기도하는 법을 배우는 유일한 방법은 교회에서 신실한 성도의 기도를 듣는 것이다. 만일 교인들이 성경적으로 사려 깊게 기도하길 원한다면, 경건한 경외심과 개인적인 열정을 가지고 기도하길 원한다면, 우리는 집단적으로 본보기를 보여주어야 한다. D. A. 카슨이 적절히 말하듯이, “본보기들을 고르되, 잘 고르라. 그들의 콘텐츠와 그들의 넓이와 그 열정을 연구하되, 그들의 말투를 흉내 내진 말라.” 

3. 하나님의 목적을 중심으로 교인들을 연합시킨다 

우리는 천성적으로 자아도취적인 사람들이다. 우리의 개인적인 필요와 소원과 욕구를 위해 기도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도 느끼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잘못은 아니다. 그런 기도도 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기도생활이, 특히 공동 기도생활이 그런 관심사들 일색이라면 얼마나 한심하겠는가. 인류 역사의 목적은 우리가 아니다. 우리의 건강과 행복이 아니다. 인류 역사의 목적은 교회와 교회의 번영이다(엡 3:1-13). 

우리가 물질적인 것보다 영적인 것을, 개인적인 것보다 공적인 것을 더 강조하기 위해 모일 때, 우리는 교회를 위한 하나님의 목적을 중심으로 교인들을 연합시킨다. 공동 기도는 공동의 연합과 공동의 증언에 대한 관심을 형성한다. 

4. 하나님이 행하시도록 교인들을 준비시킨다 

공동으로 기도하는 교회의 모습은 사도행전에 수록된 위대한 운동들의 특징이었다. 그것은 오순절에 그들이 보여준 삶의 모습이었다(2:42). 공동 기도는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말하도록 신자들을 준비시켰다(4:31). 첫 집사들을 임명하고(6:6) 공회원들에게 복음을 전하며(8:15) 심지어 베드로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것을 지시하는 환상을 보게 된 것도(10:9) 기도를 통해서였다. 베드로를 감옥에서 풀려나게 한 것도 교회의 합심 기도였다(12:5). 

친구들이여, 기도는 사역을 변화시킨다! 바울이 함께 기도하는 것을 강조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기도는 하나님이 그분의 초자연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정하신 수단이다. 그것은 인격적인 동시에 강력하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상기시키셨듯이, 오직 기도로만 타개될 수 있는 난관들이 있다(막 9:29). 

친구들이여, 《The Compelling Community》(마크 데버, 제이미 던롭 공저)라는 책에서 제이미 던롭(Jamie Dunlop)이 말하듯이, “하나님은 자신의 명성을 옹호하길 원하신다. 우리가 함께 기도할 때, 우리의 필요는 공적으로 간구된다. 하나님이 응답하실 때, 그분의 영광은 공적으로 드러난다.” 기도는 하나님이 행하시도록 교인들을 준비시킨다. 

우리 교회의 첫 번째 기도 예배 

지난달에, 우리는 첫 번째 주일저녁 기도 예배를 드렸다. 적어도 최근의 기억으로는 첫 번째였다. 그 예배를 드리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의 어설픈 순간들과 실수들이 있었다. 내가 계획했던 대로 진행되지 않았으며, 그 실책들의 많은 부분은 내 탓이었다! 

하지만 괜찮다. 하나님의 사람들인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에 힘입어 기도했다. 다른 사람들이나 다른 단체들은 하지 못하는 일을 우리는 했다. 우리는 그 일을 또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이 자신을 위해 하실 일을 볼 것이며 기다릴 것이며 고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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