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

당신의 나쁜 교회론이 우리를 해치고 있다

아티클
12.21.2015

“교회란 무엇인가?”

이것은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물음이었다. 나는 28세였고, 선교 팀 리더였다가 지역 책임자로 승진했었다. 10/40창(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의 북위 10-40도 사이에 있는 지역으로서 세계 인구의 3분의 2가 이 지역에 거주한다-역자주)에서 사역했던 80명 이상의 풀타임 선교사들을 대표하는 10명의 팀 리더들과 함께, 나는 매월의 리더 모임에 참석하고 있었다. 우리의 토론은 서로를 격려하고 동기를 부여하는 모임으로 여겨졌으며, 실제로도 종종 그러했다. 우리는 복음전도 전략과 풍성한 결실에 대해 그리고 제자들의 성장과 증가 가능성에 대해 논의했다. 그때 누군가가 바로 그 물음을, 혹은 그와 유사한 물음을 물었다. 우리의 목표는 교회를 개척하는 것인가? 우리가 그 일을 하고 있는가? 우리는 심지어 교회가 무엇인지에 대해 동의하기는 하는가? 교회를 교회 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이 물음을 두려워한 이유는 답을 모르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소득 없이 반복되는 토론을 통해 나는 참석자들 중에 아무도 답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교회를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지 몰랐다. 좋은 교회나 건강한 교회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러했다. 대학 캠퍼스에 모인 25명의 학생들의 모임과 교회의 차이는 무엇인가(우리는 그런 모임들에 많이 참석했었다)? 정규적인 성경공부를 위해 만나는 30명의 사업가들의 모임과 교회의 차이는 무엇인가?

우리에게 그것은 단순히 학구적인 물음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사역을 통해 놀라운 결실을 맺게 하심을 목격해 왔다. 이 토론을 하면서도, 우리는 바로 그 주간에 모이는 신자들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 모임들에는 우리가 제자로 삼은 사람들로 가득했으며, 그들 중 다수는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찾기 위해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가 그들에게 제공할 것을 많이 갖고 있지 않음을 재빨리 알아차렸다.

어디서나 같은 이야기

선교에 첫 발을 디딘 이후로 19년에 걸쳐, 나는 여러 단체와 지역에서 두루 반복되는 같은 이야기를 들어왔다. 서구의 선교사들은 교회에 대해 할 얘기가(적어도 성경적인 명확성을 지닌 얘기는) 별로 없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 감사하게도, 복음주의자들 가운데서는 복음이 대체로 명확하고, 성경의 무오성이 대체로 확언되며, 또한 신학의 중요성이 인정된다. 그러나 교회에 대해서는 어떠한가?

당신이 아는 선교사들에게, 그들의 사역이 교회 개척 임무와 어떻게 연관되는지 설명할 수 있냐고 물어보라. 그러면 당신은 기대했던 것보다 더 빈약한 대답을 듣게 될 것이다. 그들이 교회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 그리고 건강한 교회가 어떤 모습인지 그들에게 물어보라. 그리하면 당신은 훨씬 더 빈약한 대답을 들을 것이다.

사실상 당신이 선교사들을 파송할 때, 그들을 지원할 때,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 다른 이들과 협력할 때, 당신은 교회에 대한 교리를 해외로 전하고 있다. 여러 해에 걸쳐, 나는 우리가 나쁜 교회론을 해외에 전파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 결론을 내려왔다.

그것이 선교 현장에 미치는 결과는 비극적일 수 있다.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이러한 문제들이 유발되었다. 여기서는 그중 세 가지를 제시하고자 한다.

1. 파송하는 교회들은 종종 선교를 다른 이들에게 아웃소싱으로 맡길 수 있는 일로 본다 

교회 리더들은 자신의 교회 내부의 일을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하고, 그래서 선교사들을 관리하며 지원하는 일이 자신의 역량이나 노하우를 넘어선 것이라고 느낀다. 

파송 기관이 유익한 일을 많이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는 파송 기관이 할 수 있는 일을 교회들이 종종 과대평가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한 사람의 은사와 자격을 평가할 때, 그 어떤 평가 과정도 지역 교회의 삶에 정규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통한 평가를 대체하진 못한다. 이와 관련하여 파송 기관에서 지역 교회에 예비 선교사의 평판을 조회하는 일은 선교사로 지원하는 과정의 초기에 행해져야 한다. 이것은 교회의 평판 조회 양식이 갑자기 필요해서 급하게 진행할 것이 아니다. 

2. 파송 기관들은 그 아웃소싱을 받지만 그들은 교회에 대한 분명한 교리를 지니고 있지 않다

파송 기관들은 특정한 사역에 초점을 맞추고서 조직되기도 하고, 사역을 진행해나가면서 사역의 초점을 만들기도 한다. 어떤 기관들은 학생들이나 사업가들과 같은 특정한 부류에 대한 전도에 초점을 맞춘다. 어떤 기관들은 특정한 신학적 커리큘럼에 따라 리더들을 훈련시키는 데 초점을 맞춘다. 그런가 하면, 특정 지역이나 특정한 사람들 가운데서 새 교회를 시작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기관들도 있다. 

그런데 개척되는 교회의 장기적인 건강을 고려하여 사역의 “성공”을 평가하는 방식은 이 시나리오들에서 흔치 않아 보인다. 우리 파송 기관의 중간 리더로서, 나는 측정가능한 기관적 목표와(얼마나 많은 새 그룹들을 시작했는가?) 우리 사역의 장기적인 활력을 바라는 갈망 사이의 긴장 속에서 힘들어 했던 기억이 난다. 단순한 숫자를 넘어 우리 사역의 건강을 모색하고자 했던 나의 대화 노력은 별로 효과가 없었다. 

3. 선교사들 자신이 무엇을 목표로 하고 있는지를 모른다 

“아무 것도 목표로 삼지 않으면 매번 무언가를 맞힐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선교 현장의 모든 선교사들은 일을 잘하려고 노력한다. 그들은 자신의 믿음을 나누며, 새 신자들을 제자로 삼으려고 노력한다. 또한 그 일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기를 기도한다. 그것은 좋은 시작이지만, 성경적인 방식으로 기능하며 더 많은 사역을 위해 자체의 자원을 개발하는 개척 교회에 대한 분명한 비전을 갖는 것과는 같지 않다. 그들에게 이 비전이 결여된 이유는, 지역 교회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이 말하는 내용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상명령의 실행과 관련한 지역 교회의 핵심적인 역할을 모르기 때문이다.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더 나은 교회론을 해외로 전파하기 위해 목사인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1. 당신의 선교 프로그램을 실제적으로 평가하라

목사로서 당신은 당신이 파송하는 사람들의 특질을 알고 있는가? 그들이 현장에서 실제로 하고 있는 일을 아는가? 그들더러 그들의 사역을 상세히 설명하게 한 적이 있는가? 그들의 사역 과정을 위해 교회 차원에서 기도하고 있는가? 교회의 리더들과 멤버들이 선교사들을 통해 개척된 교회들의 건강을 위해 협력하는가? 

2. 바울의 1차 전도여행을 선교의 본보기로 삼으라(행 13-14장) 

선교사들의 양보다는 질에 초점을 맞추라. 성령이 안디옥 교회를 인도하셔서, 가장 뛰어난 두 선교사인 바울과 바나바를 파송하게 하셨다(행 13:2). 이미 당신의 교회에서 사역하고 있는 사람들을 독려하여 선교에 대해 생각하며 기도해보게 하라. 

선교사들의 사역을 교회의 핵심적인 관심사로 삼으라. 바울과 바나바를 파송할 때 안디옥 교회 전체가 금식하며 기도했다(행 13:3). 당신의 교회에서도 파송한 선교사들을 위해 보다 일관성 있게 기도할 수 있는 방안을 고려하라. 당신의 목회적인 기도와 교회 기도 모임들을 통해 후원 선교사들을 위해 그리고 세계 만민의 복음화를 위해 정규적으로 기도하라. 

건강한 교회들을 개척한다는 목표에 시선을 고정시키도록 후원 선교사들을 격려하라. 바울과 바나바는 설교나 제자화만 하지 않았다. 그들은 각 교회에서 장로들이 임명될 때까지 교회들을 계속 방문하며 보살폈다(행 14:23). 아마도 안디옥 교회가 그들에게서 기대했던 사역이 바로 이것이었을 것이다. 예비 선교사들더러 교회를 개척하는 일과 개척된 교회가 건강하게 되도록 목양하는 일 모두를 포함하는 사역 계획을 명확히 표현해보도록 요청하라. 

휴가 중인 선교사들을 초청하여 교회에 상세히 보고하게 하라. 바울과 바나바는 교인들을 함께 모으고서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행하신 모든 일을 보고했다(행 14:27). 최근의 휴가 때, 나는 몇몇 후원 교회들의 장로들로부터 보고를 요청받았다. 나는 보고를 좋아한다. 내심으로 선교사들은 후원 교회들이 선교지 교회 세우는 일을 마음으로 성원함을 알고 싶어 한다. 또한 우리는 지역민들의 미소를 담은 몇 장의 사진만이 아니라 그 이상을 책임감 있게 공유하길 원한다. 

3. 더 적은 숫자로 더 나은 결과를 얻는 사역 모델을 고려하라 

결국 나쁜 교회론을 해외로 전파하는 것은 다다익선이라는 서구적인 개념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더 많은 일꾼들을 보내고 그들에게서 더 많은 결과를 요구한다. 우리는 회심자들이나 교회들의 건강에 대해서는 묻지 않고, 더 많은 사람들의 신앙고백과 더 많은 교회 개척이라는 면에서 성공을 평가한다. 우리는 가동 중인 많은 시스템들이 깊이보다는 넓이를 목표로 삼고 있음을 알고 있지만, 그것들을 바꿀 방법을 알지 못한다. 

간단한 시작점은, 더 나은 방법으로 더 적은 사람들을 지원하는 것이다. 더 적은 선교사들에게 더 많은 돈을 지원하라. 그들의 사역처로 장로를 정규적으로 보내는 데 일부 자금을 사용하라. 휴가 중인 선교사들이 당신의 교회와 더불어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하라. 무엇보다도, 그들의 사역을 당신의 사역으로 여기라. 그저 건강한 교회를 이끄는 것만을 당신의 목표로 삼지 말고, 선교사들을 파송한 모든 지역에서 건강한 교회가 세워지는 것도 당신의 목표로 삼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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