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삶

어떤 교회 문서들이 필요하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

아티클
03.04.2016

교회 문서들은 별로 매력적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것들은 목사의 공구상자에 들어 있는 핵심 요소이다. 나는 신앙고백, 교회 언약, 교회 정관, 이 세 가지 문서의 중요성에 초점을 맞추고 싶다. 

신앙고백 

신앙 선언문(statement of faith)은 교리적 신념의 요약이다. 초기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사도신경, 니케아 신조(AD 325, 381), 칼케돈 신조(451)의 혜택을 입었다. 이 간략한 선언문들은 하나님과 그분의 복음을 믿는 공통의 기독교 신앙을 반영했다. 종교개혁 시대의 돌풍과 같았던 선언문들은 비록 이들이 교회 정치나 세례(또는 침례)에 관한 핵심적인 차이점들을 뚜렷이 표명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프로테스탄트 교회들을 하나로 통합시켰다.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1530),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1546), 사보이 선언(1658), 제2차 런던 신앙고백(1689)은 루터파와 장로교와 회중주의와 침례교 등의 교리적 확신들을 각각 진술하였다. 

21세기 교회들은 자체의 신앙 선언문들을 채택함으로써 이 풍성한 유산 위에 세워졌다. 어떤 사람이 멤버십이나 리더십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신앙 선언문에 대한 동의가 요구된다. “당신의 교회에서 신앙 선언문을 채택하라”는 구절이 바울서신에 나오진 않지만, 신앙 선언문은 지혜로운 실천사항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 물론 이를 거부하는 어리석은 경우도 있다. 

신앙 선언문은 교회에 주어진 선물이며, 당신의 교회가 무엇을 믿는지 알기 원하는 방문자들에게 주어진 선물이다. 만일 당신이 당신의 교리에 대해 솔직하면 방문자들이 당신을 더욱 신뢰할 것이다. 또한 그것은 말씀을 신실하게 가르치기를 갈망하는 교사들에게 주어진 선물이다. 교회의 신앙 선언문을 인식하는 주일학교 교사는 다음과 같은 올바른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내가 우리 학급의 모든 사람들에게 대환난 전의 휴거를 믿어야 한다고 말해선 안 된다.” 신앙 선언문은 어떤 사람의 양심을 언제 구속할지를 알기 위해 지혜를 필요로 하는 장로들에게 주어진 선물이다. “동성결혼을 확언할 자유가 있나요?”라고 한 멤버가 묻는다. 장로는 이렇게 대답한다: “없어요.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성경을 연구하여 신앙 선언문에 우리의 견해를 요약해 두었어요. 그 선언문을 읽어보세요. 그러고 나서 우리가 왜 이런 결론에 도달했는지를 알기 위해 함께 성경을 봅시다.” 끝으로 신앙 선언문이 모든 교회 멤버들에게 선물인 이유는, 그것이 우리를 함께 묶어주는 교리들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서로 공유하는 믿음이 있을 때에만 그리고 그 정도만큼만 서로 친교를 나눌 수 있다. 

물론 성경과는 달리 신앙 선언문은 무오하지 않으며, 더 명확해지기 위해 수정될 수 있다. 예컨대, 최근의 많은 교회들은 성경적 결혼관을 자세히 언급하는 선언을 첨가했다. 

좋은 신앙 선언문을 사용하는 것은 범퍼 볼링을 하는 것과 같다. 범퍼가 볼링공을 레인 위에 있게 하듯이, 신앙 선언문은 우리로 하여금 잘못된 방향으로 너무 멀리 나아가지 않고 진리를 따르도록 지켜준다. 오직 성경만이 우리의 권위이다. 성경 다음으로, 훌륭한 신앙 선언문은 건전한 교리를 지키며 독려하는 중요한 도구이다.

교회 언약 

바울은 디모데에게,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라고 말했다(딤전 4:6). 만일 신앙 선언문이 올바른 교리의 개요라면 교회 언약(Church Covenant)은 올바른 삶을 요약한다. 교회 언약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묘사함으로써 교회 리더들과 멤버들을 돕는다. 교회 언약을 적절하게 사용하면, 멤버들은 서로의 거룩성을 위한 책임을 지도록 독려받게 된다. 

나는 신앙 선언문 다음으로 교회 언약이 교회 멤버십을 위해 그리스도인들을 구비시키는 데 있어 가장 유용함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우리가 무엇을 믿는지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어떻게 함께 살기로 동의하는지에 대해서도 알기를 원한다. 교회 언약을 따라 걷는 것은 마치 성화라고 하는 공원을 산책하는 것과 같다. 그 경관을 좋아하지 않는 자들은 그곳이 그들을 위한 교회가 아님을 빨리 알게 된다. 

대체로 우리는 교회에서 주의 만찬을 거행할 때 큰 소리로 언약을 읽는다. 성경이 그렇게 실행하도록 명령하진 않지만, 성경은 자기 점검을 명하고 있다(고전 11:28). 우리가 특정한 지역 교회의 멤버가 되면서 서로에게 했던 언약을 상기하는 것보다 이 일을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겠는가? 우리는 특정한 사항을 믿기로 약속만 한 것이 아니라 특정한 방식으로 살기로 동의했다.

교회 언약은 개인적인 성실성, 형제애, 신실한 복음전도 등의 협약들로 가득하다. 경건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 우리를 구원해주진 않는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복음을 통한 성령의 사역이다. 하지만 변화된 삶은 회심의 증거이며, 교회 언약을 가장 중요한 위치에 두는 것은 성화를 가장 중요한 위치에 두는 핵심적인 방법이다. 

정관 

우리 주에서, 비영리 단체로서의 지위를 갖기 원하는 교회는 그 단체의 규칙들을 묘사하는 정관(Constitution)을 지녀야 한다. 이 같은 매우 실용적인 의미에서 교회 정관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나는 이 주제를 약간 다른 각도에서 다루고자 한다. 비록 우리 주에서 정관을 요구하지 않더라도 나는 그것을 갖추도록 독려할 것이다.

 

바울이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고전 14:40)라는 당부로써 회중 예배에 대한 논의를 결론지었을 때, 그는 교회가 정관을 채택해야 함을 뜻하지 않았다. 다만 회중 모임에서 누가 담당자인지 또는 다음 순서는 무엇인지를 아무도 모를 때 생기는 불협화음이 없어야 함을 주장했다. 신앙 선언문이 이 같은 질서를 긴 안목에서 세울 수 있는 반면에, 좋은 정관은 매우 기본적인 물음들을 구체적으로 제기한다. 누가 장로나 집사의 자격을 갖추었는가? 그들을 어떻게 뽑는가? 재정을 누가 관리하는가? 멤버십이 철회될 수 있는가? 

어떤 이들은 이런 물음들이 기껏해야 따분하며 최악의 경우에는 세속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명확성은 양들로 하여금 안전감을 느끼도록 도와준다. 그들이 과거에 리더십으로 인해 고통당한 적이 있다면 특히 그러하다. 좋은 목사는 그의 회중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만일 제가 성경에 위배되는 것을 가르친다면, 여러분은 가능한 한 신속히 저를 쫓아내야 합니다.” 제대로 된 정관은 그와 같은 일을 실행하는 법을 회중에게 알려준다. 

예수님은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고(마 10:16) 우리에게 당부하셨다. 우리는 교회가 안팎으로 공격받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성경에 철저히 순종하는 교회들은 습관적인 죄 가운데서 회개하지 않는 멤버들을 권징할 것이다. 출교 과정은 정관에 기록되어 있을 것이며, 모든 멤버들이 교회에 합류하기 전에 확언해야 하는 사항이다. 출교에 불만을 품은 멤버가 교회나 장로들을 명예훼손으로(혹은 더 심한 혐의로) 고소할 수도 있겠지만, 정관은 성경적인 도덕성을 거부하고 신실한 교회를 공격할 수 있는 세상에서 지혜롭게 살아가게 하는 한 가지 방법이다. 

그 외의 많은 문서들 

신앙 선언문, 교회 언약, 그리고 정관은 교회문서들의 왕과 왕후와 왕자이다. 이 왕족 이외에도, 우리의 관심을 끌 만한 다른 문서들이 있다. 

교회에서 아이들을(그리고 그들의 부모들을) 사랑하는 한 가지 방법은 아동보호정책(child-protection policy)을 마련하는 것이다. 아동을 해치는 자들은 조직화되지 않은 어린이 사역을 노린다. 아동보호정책을 만들지 않는 것은 우리 자신의 자녀를 방치하는 것과 다름없다. 

교회정책 매뉴얼(church policy manual)도 고려할 만한 가치가 있다. 정관에 수록되어 있지 않은 중요한 질문들이 제기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십일조와 헌금의 수입액이 감소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수입액이 늘어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스미스 여사가 앞마당에 분수를 만들기 위해 500불을 헌금하길 원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바비가 자신의 단기선교 여행을 위한 후원금을 모으고자 모든 멤버들에게 편지를 보내려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자선 요청들을 어떻게 처리하겠는가? 교회 시설을 주중에 지역사회에 개방하는가? 

모든 교회는 조만간 이 같은 질문들에 직면할 것이다. 갖가지 대답들이 교회 정관을 혼란스럽게 할 것이다. 좋은 교회정책 매뉴얼은 행정상의 틈새를 채워주며 리더들의 시간을 엄청나게 절감해줄 수 있다. 요컨대, 좋은 정관은 결정을 내리는 상황에서 교회의 연합을 조장한다. 그리고 분열이 있는 곳에는 “영적인” 것이 전혀 없다. 

결론 

우리는 대부분 교회 문서들에 대해 충분히 생각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예수께서 재림하실 것을 그리고 복음전도와 제자화에 초점이 맞춰져야 함을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에 특히 그러하다. 당신의 교회가 초점을 맞추길 원하는 것도 바로 이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수한 교회 문서들을 확보하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다. 당신의 복음전도와 제자화 사역이 스포츠카라고 생각해보라. 좋은 교회 문서들은 그 차의 아래에 놓인 평탄하고 단단한 도로와 같다. 도로가 적절한 상태로 유지될 때, 자동차는 자유롭게 속도를 내어 결승선을 통과할 수 있다. 반면에 좋은 도로가 없으면, 자동차는 속도를 줄여야 하며 심지어는 타이어 교체를 위해 차를 길 한쪽에다 대어야 할 수도 있다. 나쁜 도로는 최고의 경주용 차마저 망가뜨리기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좋은 문서들이 없는 교회는 당장은 잘 달릴 수 있겠지만, 조만간 주요 임무로부터 이탈하게 된다. 그러므로 교회 문서들을 채택하고 다듬고 사용하는 데 시간을 할애하라. 그렇게 하면, 가장 중요한 것인 복음에다 장기적으로 교회의 초점을 맞추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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