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전도 & 복음

복음전도와 교회를 연결하기

아티클
09.09.2013

복음전도는 개인 스포츠인가 팀 스포츠인가? 둘 다이다. 

고기잡이를 생각해보라. 혼자 선착장을 어슬렁거리며 내려가서 한쪽에 자리잡고 앉아 낚싯줄을 드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요동치는 바다에서 펄떡거리는 1톤의 고등어를 끌어당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트롤선의 어부들에게 물어보라. 그들은 서로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 

고기잡이 비유는 복음전도와 지역 교회의 관계에 대해 우리가 말하고 싶은 모든 것을 전해주진 않지만, 그것은 성경적이며 그것은 논의의 시작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라오면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으며, 후에 회개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전하게 하려고 그들을 둘씩 보내기도 하셨다(막 1:17; 6:7,13). 트롤선의 어부들처럼, 우리는 복음전도 사역을 하기 위해 교회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복음전도와 교회의 관련성에 대해 말해주는 더 큰 그림이 사도행전에 나온다. 사도행전 앞부분에서 사도들은 부활을 선포했고, 그들 뒤에는 모든 것을 공동으로 나누며 함께 생활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는 교회가 있었다(2:47; 5:13). 교회의 삶이 복음 선언의 배경이 되어 복음을 증언하는 역할을 했다. 교회의 삶은 많은 예루살렘 주민들이 성도들을 호의적인 눈으로 보게 했으며, 더 많은 회심자들이 생기게 했다. 

베드로가 후에 말하길, 하나님이 교회를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로 삼으신 것은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며, 또한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그 선한 행실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고 묘사할 때, 그가 염두에 둔 것도 초기 예루살렘 교회의 모습이 아닐까(벧전 2:9,12)? 

사도행전 앞장들과 베드로전서 2장에서, 우리는 벌집과 같은 교회의 모습을 본다. 벌집에는 일벌들이 꿀을 나르느라 윙윙거리며 분주하게 오간다. 꿀벌 각자의 활동을 위해 벌집이 필수적이며, 벌집 자체가 그 활동의 일부이다. 복음전도와 교회의 관계에 대해 이 모든 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그 어떤 비유도 모든 것을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여기서는 교회와 복음전도의 관계를 성경에 근거하여 네 개의 체계적인 원칙들로 요약하고, 이를 통해 실천적인 교훈을 찾아보기로 하자. 

1. 복음전도는 교회를 알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린다

만일 당신의 클럽을 누군가에게 소개하고자 한다면, 당신은 그 클럽의 모든 이점들을, 예컨대, 멤버들이 함께 누리는 재미, 매년 열리는 탁구 토너먼트 등을 알릴 것이다. 이것은 복음전도와 교회에는 적용되는 방식이 아니다. 

복음전도는 교회를 알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린다. 이것이 첫 번째로 유의해야 할 사항이다. 

바울은 고린도인들에게 이르기를, 그리스도께서 그에게(그리고 그들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과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주셨다고 한다. 그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했다. 이 화목의 메시지는 간명하다.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고후 5:18-21)는 것이다.

복음전도자의 좋은 소식은 “다른 사람들과 화목하라”가 아니다(물론 그 좋은 소식이 결과적으로 그런 화목으로 안내할 것이지만). 그보다는, 복음전도자의 좋은 소식은 어떻게 사람이 하나님과 화목해질 수 있는가이다. 다른 모든 것은 이것에서 비롯된다.

2. 교회는 복음전도의 한 결과이다

복음전도를 통해 첫 번째로 바라는 결과는 하나님과의 화목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바라는 결과도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와의 화목이다. 

만일 회심 교리의 집단적 요소를 간과한다면, 그것은 전체의 본질적 부분을 간과하는 것이다. 주님이 언약적 머리시라는 것은 언약 백성들이 있음을 뜻한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집단적 연합은 단지 회심에 일부 관련되어 있는 데 불과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회심의 일부이다. 하나님의 백성과 화목해지는 것은 하나님과 화목해지는 것과 구분된다. 하지만 분리될 수 없다(필자의 책 《The Corporate Component of Conversion》을 보라). 

이들 모두는 에베소서 2장에 잘 나와 있다. 1-10절은 용서와 하나님과의 수직적 화목에 대해 설명한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그 다음에 11-22절은 수평적인 화목을 제시한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14절). 14절의 행동이 과거시제로 묘사되었음에 주목하라. 그리스도께서 유대인과 이방인을 이미 하나로 만드셨다. 그들이 그리된 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기 때문이며,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수직적 화목을 성취하신 바로 그 자리에서 그렇게 하셨다(에베소서 4장 1-6절도 보라). 

요컨대, 우리는 한 백성으로 구원받았다. 

사도행전은 앞부분은 교회의 모습이 실제로 어떠했는지를 보여준다.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또는 침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행 2:4; 2:47, 4:4, 6:7 참조).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수가 더해졌다. 그들은 헤아려졌다. 그들의 이름이 추가되었다. 만일 당시에 카메라가 있었다면, 교인 인명부에 사진이 첨부되었을 것이다. 

회심한 자의 삶은 회중적으로 형성된다.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에 소속된다. 복음전도자들은 교회에 사람들을 보내는 것이다.

3. 복음전도는 교회의 일이다

셋째, 복음전도는 교회의 일이다. 일단 한 사람이 하나님과 화목해지고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과도 화목해지면, 그는 새 일을 얻게 된다. 복음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는 일이다.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막 1:17; 마 28:19). 달리 말해서, 모든 그리스도인과 교회 멤버들은 복음을 전할 책임이 있다(티모시 베우거의 “Must Every Christian Evangelize?”를 보라). 

사도행전의 앞장들은 사도들의 설교를 강조하지만, 예루살렘에 핍박이 닥치고 교회가 흩어졌을 때,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했다(행 8:4). 

지역 교회는 하나님께 예배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존재한다. 교사들이 가르치고 멤버들이 배우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사실 예수님이 소위 복음 전하는 자들과 목사들과 교사들을 교회에 주신 것은 교인들의 사역을 준비시키는 일을 맡기시기 위함이다(엡 4:11,12). 그 사역에 복음전도가 포함되는 것은 물론이다. 

우리는 그물을 잡아당기는 일에 협력한다.

4. 교회는 복음전도에 있어 변증적 역할을 한다

회중으로 함께 모인 회심한 사람들의 삶은 그들을 구원한 복음을 추천하는 삶이어야 한다. 레이 오틀런드(Ray Ortlund)가 썼듯이, “복음 교리는 복음 문화를 창출한다.” 교회에 구현되는 그 문화는 외부인들에게(최소한 일부 외부인들에게) 매력적이어야 한다(고린도후서 2장 15-16절을 보라). 

이것은 윙윙거리는 벌들이 꿀을 채우는 벌집으로서의 교회의 모습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우리는 이 모습을 사도행전과 베드로전서 2장에서 본다. 예수님이 소금과 빛인 교회에 대해 말씀하시는 마태복음 5장에서도 본다(13-16절). 또한 이것은 요한복음 13장에서 두드러지게 묘사된다. 거기서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라고 말씀하신다(34-35절). 

외부인들에 대한 우리의 선한 행실과 동료 교회 멤버들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이웃 사람들과 직장 동료들을 예수님께로 이끈다. 

요컨대, 지역 교회는 복음전도에 있어 변증적 역할을 한다. 교회의 삶이 복음을 위해 논증한다. 함께 살아가는 신자들이 하나님의 구원 능력을 증언한다. 우리가 매주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에 따라, 그리고 성령께서 우리를 점점 더 아들의 형상으로 변화시켜 가심에 따라, 우리는 복음이 개인으로서의 그리고 한 백성으로서의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본을 보인다. 

서서히 우리는 새 창조의 첫 열매이신 분을 따라 새로운 인류로 변해간다(골 1:15). 이 새로운 인류는 우리의 복음전도에 있어 멋진 배경막이나 광고판의 역할을 한다. 그것은 이 세상의 문화에 대조되는 문화를 제시한다. 

실천적인 수확 

이들 네 개의 체계적인 원칙들로부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실천적인 교훈은 무엇인가? 종종 목사들은 교인들더러 복음을 전할 것을 권함으로써 교회의 복음전도 사역을 강화하려 한다. 분명히 그것도 한 방법이다. 하지만 대조적인 문화를 지닌 교회의 모습을 강화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이러한 교회는 복음전도를 위한 매력적인 배경막 역할을 한다. 

1) 복음전도는 세례(또는 침례)와 멤버십으로 이어져야 한다. 교회가 전도한 후에 새 회심자들을 방치해선 안 된다. 어떤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세례(또는 침례)를 베풀고는 한참 후에야 그를 교회 멤버십으로 인도하는 방식을 취해서도 안 된다. 예외적인 상황을 제외하고는(예, 에디오피아 내시),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가 했던 대로 해야 한다. 즉, 회심한 자들에게 세례(또는 침례)를 베풀고 그들을 구성원으로 포함시켜야 한다(행 2:41). 결국, 세례(또는 침례)는 어떤 사람이 신자임을 교회가 공식적으로 확언하는 공동의 권위 있는 징표이다. 멤버십과 성찬(또는 주의 만찬)을 통해 주어지는 지속적인 감독을 통해 이 확언은 보호되고 양육되어야 한다. 우리는 알에서 갓 부화한 새들을 둥지 밖에 방치하지 않고 안으로 인도해 들인다. 

2) 서로의 삶을 연합하도록 멤버들을 가르치라. 교회의 변증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멤버들은 말씀의 가르침과 성찬(또는 주의 만찬)을 통해 우리가 한 몸임을 부단히 상기해야 한다(예, 고전 10:16-17; 12장). 서로를 격려하고 세우고 강화시키고 진리를 말하고 경고하며 또한 서로 사랑할 수 있도록 서로 간의 관계를 세워야 한다는 사실을 매 주일마다 멤버들에게 상기시켜야 할 것이다(롬 12:9-13; 엡 4:11-32). 또한 서로 환대하도록 멤버들을 권면해야 한다(롬 12:13; 벧전 4:9). 이 모든 일이 복음을 매력적으로 증언한다. 

3) 서로를 위해 희생하도록 멤버들을 가르치라.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리스도인들은 재정적으로나 다른 면에서나 서로를 위해 더 잘 희생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예, 행 2:42-46; 고후 8-9장; 벧전 4:10). 특히, 소비자중심적인 나라에서는, 신자들의 관대한 나눔은 현저히 대조적인 문화를 보여준다. 예수께서 자신이 우리를 사랑하셨듯이 서로 사랑할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말씀하셨음을 기억하라(요 13:34). 그것은 진정한 희생적 사랑이었다. 

4) 교회 권징을 실행하라. 우리 가운데 있는 위선자들과 이단들은 교회의 증언을 타협하게 한다. 지역사회에서 교회 멤버들이 거짓말쟁이와 험담꾼과 간음자들로 알려지면, 그 교회의 복음전도 사역은 제대로 진전되지 않는다. 이는 죄와 씨름하는 모든 성도를 교회가 권징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만일 그리하면 남아날 교회가 없을 것이다. 다만 교회는 회개하지 않는 죄인을 지적하며 권징해야 한다. 이 권징은, 역설적이게도, 교회 밖의 사람들은 물론이고(고전 5:1-2) 회개하지 않은 멤버들에게도(고린도전서 5장 4절을 보라) 복음을 전하는 계기가 된다. 

5) 복음을 전하도록 멤버들을 구비시키라. 교회 리더들은 모든 멤버들이 믿음의 기초를 확실히 설명할 수 있게 할 여러 방법들을 모색해야 한다. 이 일은 설교단, 주일학교 모임, 멤버십 인터뷰 등에서 행해질 수 있다(케빈 맥케이의 “Overcoming Objections to Evangelism”을 보라). 

6) 외부인들에게 축복이 되는 삶을 살도록 멤버들을 독려하라. 교회 멤버들이 친절하고 우호적이며 흔쾌히 손 내미는 사람들로 알려지면 좋을 것이다. 우리는 이웃의 낙엽들을 치우러 속히 빗자루를 들고 나서며, 사무실 동료에게 속히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성폭행 피해자를 속히 보호하고, 힘든 시기에 열심히 일하는 종업원들의 일자리 유지를 위해 열심히 해야 할 일을 하는 등, 복이 되는 온갖 일들에 속히 나서야 한다. 선한 행위는 우리의 복음전도의 말을 장식한다. 

7) 사람들을 교회의 공식적, 비공식적 모임에 초청하라. 비그리스도인들이 공식적인 모임이나 비공식적 모임에서 복음을 듣고 교회의 모습을 보고서 믿음을 갖게 된 사례들이 무수하다. 교회의 함께하는 삶이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것은 그들의 가족이나 학교나 일터에서 결코 알지 못했던 어떤 것을 그들에게 알려주었다. 달리 말해서, 외부인들을 교회의 삶 속으로 초청하는 것은 분명 복음전도의 한 부분이다. 

8) 복음전도의 모범을 보이라. 장로들이 복음전도를 열심히 하는 교회에 대해서는 통상 복음전도적 교회를 기대할 수 있다. 장로들이 복음전도를 하지 않는 곳에서는 교회의 그런 모습을 기대하기 어렵다. 

9) 복음전도와 회심 이야기들을 부각시키라. 교회의 지도자들은 자신의 설교나 교육에 자신이 전도하다 겪은 이야기들을 양념으로 넣어야 한다. 교회 멤버들은 복음전도 기회를 위한 기도 부탁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세례(또는 침례) 후보자들에게 회심 경험을 나눌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이 모든 일들은 복음전도가 그리스도인의 삶과 교회 경험의 “정상적인” 일부이게 한다. 

10) 당신의 교회를 자랑하라. 사도 바울은 때로 그리스도에 대해 자랑하는 한 방편으로 자신의 교회들을 자랑했다(고후 9:2; 살후 1:4를 보라. 빌 2:16 참조). 그리스도인들은 주변의 비그리스도인 친구들에게 자신의 교회에 대해 긍정적으로 그리고 감사하며-밉살스럽게 또는 교만한 태도로가 아니라-말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주말 계획을 묻는 직장 동료에게, 교회에서 당신의 아내에게 멋진 베이비 샤워(지인들이 선물 등을 가지고 집을 방문하여 아이 낳은 것을 축하하는 행사-번역주)를 선물했던 사실을 얘기하라. 주일에 설교자에게서 들은 고무적인 메시지를 언급하라. 노숙자에 대한 얘기가 나올 때, 노숙자 쉼터에서 봉사하는 교인들에 대해 언급하라. 이 일을 잘하려면 당연히 연습이 필요하다. 

결론 

교회와 복음전도를 올바로 연결시키려면 교인들에게 전도를 권면하는 것 이상의 일이 요구된다. 행정, 멤버십, 권징 등의 문제들을 잘 처리해야 한다. 선포되는 하나님 말씀을 청종하는,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교회의 임무가 무엇인지를 아는 건강한 교회를 세워야 한다. 

가르치며 모범을 보이는 경건한 리더들이 요구된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그리고 자신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신 주님을 교회 안팎에서 찬양하지 않을 수 없는 멤버들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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