멤버십 & 권징

당신은 교회 권징을 언제 실행하는가? 그리고 교회 안에서 죄를 발견할 때 이에 어떻게 직면하는가?

아티클
06.01.2016

교회 권징의 대부분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의 일상적인 관계 안에서 행해져야 한다. 이는 줄곧 서로를 바로잡으려고 분주한 사람들로 가득한 교회를 우리가 원한다는 말이 아니다. 그런 교회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단지 우리는 경건을 갈망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교회를 원할 뿐이다. 대체로 멤버들은 교정을 기피하지 않고 요청한다. 성장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라이언, 내가 그 모임을 인도한 방식에 대해 혹시 내게 조언해줄 것이 있나요. 어떻게 하면 내가 더 잘할 수 있었을까요?” 

“잭, 나는 당신이 나의 결혼 생활에 대해 언제나 조언해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으면 좋겠어요. 나의 육신은 참으로 이런 부탁을 원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조언을 구합니다. 옆에서 나의 부모 역할을 지켜보실 때 내게 뭔가 해주실 말씀은 없나요?” 

저자들은 때로 형성적인 권징과 교정적인 권징을 구분한다. 형성적인 권징은 가르침을 뜻한다. 교정적인 권징은 실책을 바로잡음을 뜻한다. 하지만 이 둘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 중 어느 하나에만 해당하는 경우는 드물다. 교회의 삶에 있어, 형성적이면서 교정적인 권징은 주일만이 아니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행해진다. 권징은 제자화 과정을 묘사하는 또 다른 방식이기도 하다. 제자화와 권징을 언제 행해야 하는가? 한 주 내내 행해야 한다. 

더 힘든 물음 

하지만 더 힘든 물음이 있다. 권징의 다음 단계로 나아갈 때는 언제인가? 즉, 개인적인 단계로부터 두세 사람이 나서는 단계로, 혹은 두세 사람이 나서는 단계로부터 전체 교회에 알리는 단계로 나아갈 때는 언제인가? 이와 관련된 손쉬운 공식은 없다. 각각의 경우마다 적절히 판단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경우에는 우리 교회의 장로들이 오래도록 수고할 필요가 있었다. 심지어 여러 달이나 여러 해 동안 수고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갈 결정을 내리지 못했던 상황도 있다.

이는 대체로 죄에 연루된 사람이 우리와 더불어 죄에 대항하여 싸우고 있을 경우에 해당한다. 우리 교회의 장로단이 한 부부에 대한 문제로 4, 5년에 걸쳐 수고했던 것을 나는 기억한다. 상담을 시작했던 장로들은 임기가 만료되어 사임하고 새 장로들이 이 부부의 문제를 인계받는 상황이 여러 차례 반복되었다. 하지만 그 부부 중 누구도 공적으로 출교되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쉬운 물음 

적어도 이론적인 면에서는, 상대적으로 대답하기 쉬운 물음이 있다. 공적인 공개와 출교에 적합한 죄는 무엇인가? 이 물음에 대답하기 위해, 예전 세대의 저자들은 종종 성경에 나오는 죄의 목록들을 모으곤 했다. 예를 들면, 고린도전서 5장과 6장에 나오는 목록들과 같은 것이다.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고전 5:11). 그러나 우리가 이런 목록들에만 집착한다면, 탐욕을 부리는 자를 출교해야 하고 횡령자는 출교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일까? 속여 빼앗는 자는 출교 대상이고 살인자나 소아성애 도착자는 아니란 말인가? 횡령자, 살인자, 소아성애 도착자는 이런 목록에 전혀 나오지 않는다. 

우리가 이 목록들에만 의존할 필요는 없는 것이 분명하다. 여기서 바울은 믿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 상태에 계속 머물 것으로 예상되는 종류의 죄들을 묘사하고 있다(고전 6:9-10을 보라). 

따라서, 위의 물음에 대한 간단한 대답은 외적으로 행해지며, 심각하며, 회개하지 않은 죄들만이 공적인 공개와 출교에 적합하다는 것이다. 이들 세 가지 사항 중 한두 가지에만 해당하지 않고 셋 모두에 해당하는 죄이어야 한다. 

(ⅰ) 외적으로 행해지는 죄이어야 한다 

첫째, 눈에 보이거나 귀에 들릴 수 있는 죄이어야 한다. 마음속에 조용히 품고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죄는 해당하지 않는다. 바울이 위의 목록에 탐욕을 포함시키지만, 탐욕에 대한 외적인 증거가 보이지 않는다면 우리가 어떤 사람을 탐욕을 품었다며 출교시키진 않는다. 세속 법정 시스템도 주의 깊게 증거를 숙고하는데, 교회가 덜 신중해서야 되겠는가? 예수님은 군중 재판에 관심이 없으시다. 

하지만 내가 “외적”이라고 말하고 “공적”이라 말하지 않은 점에 주목하라. 예컨대, 간음은 공적이지 않고 사적인 죄이다. 내가 “외적”이라고 말한 건 바로 이 때문이다. 

(ⅱ) 심각한 죄여야 한다 

근심과 두려움과 스트레스도 죄일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공적인 공개와 출교에 적합한 죄가 아니다. 

예를 들어, 어떤 형제가 없는 얘기를 부풀리는 것을 내가 포착했는데 그가 그 사실을 부인한다면, 그는 죄를 범하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죄를 공적으로 문제삼지는 않을 것이다. 베드로는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라고 말한다(벧전 4;8). 분명 건강한 교회의 주요 특징들 중의 하나는 동료 멤버들의 죄를 많이(심지어 대부분) 간과하는 것이다. 

그러면 심각한 죄란 어떤 것일까? 그것은 적어도 회개하지 않는 한 하나님의 영을 지닌 그리스도인으로 보기 힘들게 하는 죄이다. 멤버십이 무엇인지를 기억하라. 어떤 사람의 신앙고백을 교회가 확언해주는 것이다. 심각한 죄는 지켜보는 세상 사람들 앞에서 신앙고백의 신빙성을 계속 확언하는 것을 어렵게 하는 죄이다(설혹 불가능하게 하지는 않더라도). 어떤 사람이 이야기를 과장해서 부풀리고는 그 사실을 부인하더라도, 그에게 믿음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내가 분명한 양심으로 계속 확언할 수 있다. 반면에 성적 부도덕이나 욕설이나 술 취함을 계속 고집하는 사람의 믿음에 대해서는 내가 분명한 양심으로 계속 확언할 수 없다. 

“심각함”의 기준이 다소 주관적일까? 한 상황에서 출교에 합당한 어떤 죄가, 여러 가지 요인들로 인해 다른 상황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상황들을 다룰 수 있는 정확한 판례법이 성경에 제시되어 있다면, 얼마나 쉽겠는가. 현 상황에서는, 우리가 주님께 지혜를 구하며 믿음으로 행해야 할 것이다. 덧붙여 말하자면, 이것은 교회에서 가능한 한 많은 장로들을 육성해야 하는 이유들 중 하나이다. 이 힘든 문제를 교회에 제시하기 전에 먼저 심사숙고하는 일은 한두 사람이 맡기에 무리이다. 

(ⅲ) 회개를 거부하는 죄이어야 한다 

그 사람은 자신의 죄를 지적받아 왔다. 그것이 죄임을 그가 인정하든 않든, 그 죄를 중단할 것이라고 말하든 않든, 결과적으로 그는 그 죄를 중단하길 거부한다. 계속 그 죄로 돌아간다. 그 죄와 결별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죄 지은 자를 어떻게 대면해야 하는가? 

예수님이 화가 나서 상을 뒤엎으셨던 때가 있다. 사도들이 특정한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독설을 퍼부었던 때가 있다(사도행전 8장의 베드로와 마술사 시몬 또는 고린도전서 5장의 바울에 대해 생각해보라). 그리고 동료 멤버를 매우 통렬한 방식으로 바로잡아야 하는 드문 경우들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상황에서는, 지적하거나 의문을 제기할 때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해야 한다. 

  • 신중하게: 마태복음 18장에서 제시하는 과정은 바로잡는 일에 나서는 사람들이 가능한 한 적어야 함을 알려준다. 
  • 온유하게: 바울은 사람들을 바로잡을 때 “온유한 심령으로” 할 것을 당부한다(갈 6:1). 
  • 경계하면서: 같은 구절에서, 바울은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라고 덧붙인다. 유다도 이 점에 동의한다: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까지도 미워하되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유 23절). 죄는 몰래 스며든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도우려 하는 중에도 죄에 빠져들기 쉽다. 
  •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유다는 이 점을 두 차례 언급한다: “긍휼히 여기라”(유 22절), “긍휼히 여기라”(유 23절). 마치 자신은 같은 죄악을 결코 범하지 않을 것처럼 자기 의를 과시하는 식으로 하지 말고, 긍휼과 이해심을 담은 말로 하라. 
  • 편파적이지 않게: 우리는 예단하지 않고 쌍방의 이야기를 모두 들으려고 노력해야 한다(딤전 5장 21절을 보라). 
  • 명쾌하게: 단호하지 않게 수동적으로 말하거나 빈정대는 식으로 대면하는 태도를 취하면 안 된다. 그러한 태도는 당신 자신을 보호하는 데만 도움이 될 뿐이다. 우리는 반격에 노출될 각오로 분명히 지적해야 한다. 죄를 범한 사람더러 자백하라고 요청하려면 특히 그리해야 한다. 때로, 삼가서 말하는 것이 온유함이라는 목적이나 스스로 말을 꺼내게 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명쾌함이라는 목적을 간과할 순 없다. 원이 더 커질수록 당신은 더 명쾌하게 지적해야 한다. 결국, 적은 양의 누룩이 반죽 전체에 퍼진다(고전 5:6). 사람들은 경고를 받아야 한다. 
  • 단호하게: 권징의 최종 단계 즉 출교나 배제에 들어서면 전체 교회는 단호한 행동을 취해야 한다.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고전 5:7),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딛 3:10). 그 사람을 더 이상 교회 멤버로 여기지 않고 주의 만찬 참석도 허용하지 않음을 분명히 해야 한다. 

바로잡는 문제에 있어서는 항상 지혜가 요구된다. 동일한 두 상황이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에 대해서는 이렇게 했어”라고 말하기가 쉽다. 전례로부터 배울 것이 많지만, 우리는 최종적으로 하나님 말씀의 원칙과 성령의 인도하심 그리고 모든 구체적 상황에 대한 주의 깊은 조사에 의존해야 한다.

편집자 주: 이 아티클은 Jonathan Leeman의 신간 도서 Understanding Church Discipline (B&H, 2016)에서 발췌하여 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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