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신학

회심과 이스라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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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9.2012

성경 내용이 큰 줄거리를 가진 이야기라는 사실은 오늘날 누구나 강조하는 바이며, 실제로 그러하다. 종종 성경은 창조, 타락, 구속, 그리고 완성이라는 이야기로 특징지워진다. 그것은 창조로부터 새 창조로 나아간다.

그렇다면 회심은 어느 부분에 속할까? 그것은 구속 부분에 속한다.

분명, 회심이 성경 이야기의 중심 주제인 건 아니다. 회심이 지향하는 목적 부분이 성경 이야기의 중심에 해당한다. 이는 우리가 지음받은 목적이기도 하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 말하듯이, 우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히 즐거워하기 위해” 지음받았다. 장차 새 세상이 도래할 것이며, 거기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얼굴을 대면하며 그와 함께 영원히 다스릴 것이다(계 22:4). 

그런데 회심은 이 이야기에 있어 기초가 된다. 왜냐하면 회심하지 않은 자는 하나님의 새 창조의 일부일 수 없기 때문이다. 성경의 이야기에서 매우 분명한 것은, 우리를 구속하신 하나님, 즉 흑암의 지배로부터 우리를 구해내어 그분의 사랑하시는 아들의 나라에 속하게 하신 하나님을 우리가 천성에서 영원히 찬양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우리의 삶 속에서 이루시는 하나님의 결정적인 구원 사역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언제나 우리의 찬양에 있어 중심적인 것이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성경 이야기의 방대한 부분을 차지하므로, 왜 회심이 그 이야기의 기초가 되는지를 여기서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회심과 이스라엘 이야기 

이스라엘의 역사는 사실상 아담으로부터 시작된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세상을 다스림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지음받았다(창 1:26-28). 그들은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에서 그분의 대리 통치자여야 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지시를 신뢰하며 그것에 순종함으로써 그분의 통치권 아래에서 다스려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통치권에 반역했으며 창조주께 찬양과 감사를 드리지 않고 피조물인 자신을 숭배했다. 불순종의 결과로 그들은 죽었다(창 2:17). 그들은 죄를 짓는 순간부터 하나님에게서 분리되었고, 회개하지 않는 한 영원한 죽음에 처해질 운명이었다. 

죄를 범한 이후의 아담과 하와에게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회심이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안에 있지 않은 자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세상을 다스리거나 하나님의 축복을 세상에 확산시킬 수 없었다. 

하나님은 여자의 후손이 뱀과 뱀의 후손을 이길 것을 약속하셨다(창 3:15). 초기 인류 역사는 인생들의 철저한 죄악을 보여준다. 모든 사람들은 아담의 아들과 딸로서(롬 5:12-19) 그리고 뱀의 후손으로서(마 13:37-38; 요 8:44; 요일 5:19) 세상에 들어온다. 오직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경험하는 자들만 사탄의 지배에서 벗어날 것이다. 예컨대, 가인은 의로운 아벨을 살해함으로써 자신이 어느 편에 서 있는지를 보여주었다(창 4:1-16). 

악의 힘은 얼마나 강했을까? 노아 당시의 세상에는 여덟 명의 의인들만 남았다! 인류는 철저히 악했고, 창세기 6장 5절은 죄가 만연한 상태를 증언한다. 뱀의 후손이 땅을 지배했지만, 하나님은 홍수로 죄인들을 멸함으로써 자신의 거룩하심과 통치 권리를 보여주셨다. 그래서 새로운 시작이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황은 거의 개선되지 않았다(창 8:21). 바벨탑 사건은(창 11:1-9) 새 창조가 눈앞에 닥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세상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 의해 다스려지고 있지 않았다. 새 창조는 새 마음 없이는 도래할 수 없었다. 

바벨에서 사람들이 흩어지고 심판받은 후에 아브라함이 부르심을 받았다(창 12:1-3). 악한 세상에서 다시 한 사람이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그는 복을 약속받았다. 말하자면, 가나안 땅이 새 에덴이 될 것이었고, 아브라함은 어떤 면에서 새 아담이었다. 아브라함의 후손이 하나님의 후손일 것이고,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축복이 결과적으로 온 세상으로 확산될 것이었다. 아담과 하와가 행하도록 부르심 받은 대로, 사람들이 하나님의 통치권 아래에서 세상을 다스릴 것이었다. 

이 이야기의 전개 기간이 길다는 점이 참으로 주목할 만하다. 이 약속들은 거의 2천 년이 지나도록 성취되지 않았다. 창세기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된 후손에 초점을 맞춘다. 이 족장들은 가나안 땅을 물려받지 못했으며 온 세상에 확산되는 축복을 보지도 못했다. 

출애굽기에서 신명기로 이어지는 서사에서는, 이스라엘이 애굽의 종살이로부터 해방된(출 1-15장) 사실을 회고한다. 이제 하나님은 많은 후손에 대한 약속을 성취하고 계셨다. 이스라엘의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애굽으로부터 해방시켜 일종의 새 에덴인 가나안 땅으로 이끄셨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왕적 통치가 실행될 것이었고, 만민은 하나님의 통치권 아래에서 살아가는 백성의 의와 평안과 형통을 볼 것이었다. 하지만 애굽을 떠났던 세대는 그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민 14:20-38). 그들은 애굽으로부터의 위대한 구원과 하나님의 모든 표적과 기사들을 본 후에도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길 거부했다. 애굽으로부터 구출된 이스라엘 백성 중 대부분은 완고하며 반역적이었고, 여호와를 진정으로 알지 못했다(고전 10:1-12; 히 3:7-4:11 참조). 그들은 여호와를 사랑하고 경외하며(신 30:6) 그분의 길로 행할 수 있으려면 마음의 할례를 받을-회심할-필요가 있었다. 

광야 세대 이후에 일어난 후손들은 이전 세대가 실패한 일에 성공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신뢰하며 순종했으며,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가나안 땅을 유업으로 받았다(수 21:45; 23:14). 이제 이스라엘은 그들의 새 에덴에서 살며 여호와의 통치권 아래에서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삶을 보여줄 태세를 갖추었다. 하지만 사과 속에는 아직 벌레가 있었다. 여호와께 대한 이스라엘의 순종은 오래가지 않았다. 사사기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만민에게 복이 되기는커녕 도리어 그들을 모방했고 이교적인 삶의 방식에 빠져들었다. 이스라엘이 회개했을 때 여호와께서 그들을 구원하셨지만, 그들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죄악으로 되돌아가기를 반복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무엇을 해야 했나? 아브라함에게 약속이 주어진 이후로 거의 1000년이 지났다. 이스라엘은 인구가 엄청 늘어난 상태로 가나안 땅에 살았지만, 전 세계적인 축복에 대한 약속은 실현될 조짐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왕을 원했고, 다른 민족들의 경우에서처럼 왕이 그들을 구원해줄 것임을 확신했다(삼상 8:5). 사울이 왕으로 임명되었을 때, 그는 아브라함처럼 어떤 면에서 새 아담이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이스라엘을 다스리도록 하나님에 의해 임명되었다. 그러나 사울은 아담처럼 여호와께 반역했고, 그래서 왕의 자리에서 제거되었다(삼상 13:13; 15:22-23). 이스라엘에 대한 여호와의 통치는 사울의 통치로 실현되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윗을 왕으로 임명하셨고, 사울과는 달리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나라를 다스렸다(삼상 13:14). 하지만 밧세바와의 간음과 우리아 살해는 그가 하나님의 축복을 온 세계에 임하게 할 대행자가 아님을 드러냈다(삼하 11장). 

솔로몬이 즉위했을 때, 새 창조의 낙원이 눈앞에 닥친 것 같았다(왕상 2:13-46). 그는 평화로 특징지워지는 통치를 했으며, 여호와를 위해 장엄한 성전을 지었다(왕상 3-10장). 솔로몬이 처음에는 지혜롭게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백성을 다스렸지만, 나중에 여호와를 멀리하고 우상숭배로 돌이켰다(왕상 11장). 그 결과, 이스라엘은 두 왕국으로 쪼개졌다. 북쪽의 이스라엘과 남쪽의 유다였다(왕상 12장). 오래도록 죄악으로 빠져들다가, 이스라엘은 B.C. 722년에 앗수르인들에게 그리고 유다는 B.C. 586년에 바벨론인들에게 포로로 잡혀 갔다(왕하 17:6-23; 24:10-25:26). 아브라함의 소명 이후로 근 1500년이 지났다.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땅과 후손과 축복에 대한 약속들은 성취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더 이상 가나안 땅에 있지 않고 포로지에 있었다. 온 세계를 복되게 하기는커녕, 이스라엘은 세상 나라들처럼 되었다. 

왜 이스라엘이 포로로 잡혀갔을까? 무엇이 문제였는가?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이 죄 때문에 포로로 잡혀갔다고 거듭 가르친다(사 42:24-25; 50:1; 58:1; 59:2,12; 64:5). 이사야서에서 하나님은 새로운 출애굽과 새 창조를 약속하신다. 하지만 새 출애굽과 새 창조는 죄 사함을 통해서만 올 것이었다(사 43:25; 44:22). 그리고 이 용서는 여호와의 종의 죽음을 통해 현실화될 것이었다(사 52:13-53:12). 

예레미야도 같은 진리들을 가르친다. 이스라엘에게 필요한 것은 할례받은 마음이었다(렘 4:4; 9:25). 달리 말해서, 그들에게는 중생과 회심이 필요했다. 예레미야는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의 마음에 그의 법을 기록하고 그들로 하여금 그에게 순종할 수 있게 하는 새 언약이 도래할 것임을 예언한다(렘 31:31-34). 유사하게, 에스겔서는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의 죄를 정결케 하시며 그들의 돌 같은 마음을 부드럽게 하실 날을 내다본다(겔 36:25-27). 그들의 변화된 마음은 성령의 사역에 따른 결과일 것이며, 그로 인해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길로 걷고 그의 계명을 지킬 것이었다. 

이스라엘은 B.C. 536년에 포로지로부터 돌아왔지만, 선지서들에 나오는 위대한 약속들이 완벽하게 실현되진 않았다. 이스라엘은 학개, 스가랴, 에스라, 느헤미야, 그리고 말라기 시대에 고투를 벌였다. 약속된 성령의 사역이 아직 전개되지 않았다. 그들은 한 왕을 기다리고 있었다. 새 창조의 도래를 기다리고 있었다. 

회심 없이는 이스라엘이나 세상을 위한 축복도 없음 

이스라엘 역사는 죄 사함과 할례받은 마음을 떠나서는 새 창조와 새로운 출애굽을 누릴 수 없음을 보여준다.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들은 이스라엘의 죄와 반역 때문에 실현되지 않았다. 이스라엘 역사는 여호와의 뜻을 거듭 불순종하며 거역한 것으로 특징지워진다. 이스라엘에게는 죄 사함이 절실하게 필요했고, 이사야는 이사야 53장의 고난받는 종을 통해 그러한 죄 사함이 실현될 것임을 가르친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성령의 초자연적인 사역도 필요했다. 이스라엘이 회심할 필요가 있었다. 회심은 이스라엘 이야기에 기본적이다. 왜냐하면 이스라엘과 세상에게 약속된 축복들은 회심을 떠나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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