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

적정한 회심 교리의 과소평가된 목회적인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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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9.2012

올바른 회심 교리는 당신에게 목회적인 힘을 줄 것이다. 

개인적 사례 

예를 하나 들고서 시작하자. 언젠가 나는 나의 잘못된 욕구를 내 친구에게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설명하기를, 나의 신학은 그것이 잘못임을 알지만, 내 자신의 일부는 그것을 정당화하려는 유혹을 받으며 마치 “그 욕구가 내 인격의 본질에 얽혀 있어서 그것이 마치 내 영혼 자체의 일부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나는 나의 욕구가 얼마나 강하게 나인 것처럼 느껴지는지 설명하기 위해 그런 표현을 사용했었다. 

내 친구는 상냥한 표정으로 단지 에베소서 4장 말씀을 인용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그는 “옛 사람”을 강조했다. 그렇다. 그런 욕구들이 내 인격 자체를 구성하는 요소로서 “천처럼 짜여 들어온 것”이 사실이다. 나의 옛 사람은 부패했다. 그 옛 사람에게서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하지만 좋은 소식이 바로 곁에 있었다. 내 친구는 그 다음 말씀으로 이어 갔다.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나는 새 사람을 입었지 않은가? 옛 나도 있지만, 새로운 나도 있다. 이 새로운 나는 하나님을 따라 지으심을 받았다. 

요컨대, 내 친구는 몇몇 성경 요절들로 나의 회심을 상기시켜 주었다. 그날에 나는 기분이 우울해져 있었고 내게 결여된 것으로 인한 실망감 때문에 그 우울함이 더해졌는데, 그의 말을 듣고서 기쁨을 되찾았다. 그의 말은 내게 소망을 주었다. 

두 가지 목회적인 힘 

당신은 올바른 회심 이해가 어떻게 목회적인 힘을 제공하는지 아는가? 새 창조의 생명의 실재와 약속 안에 그 힘이 있다는 것을 아는가?

1. 그것은 당신에게 죄에 사로잡힌 그리스도 안의 형제자매들을 격려하며 생기를 돋울 능력을 준다. 그 죄는 중독일 수 있다. 교회 내의 다른 형제자매를 미워하는 마음일 수도 있다. 기원을 알 수 없는 절망감일 수도 있다. 많은 경우들에서, 죄는 기만적이며, 마치 죄가 불가피한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실제적인’, ‘확실한’, ‘분명히 느껴지는’, ‘자연스러운’ 혹은 심지어 ‘정당한’ 것이라는 가면을 쓴다. 하지만 올바른 회심 교리는 그런 가면 속의 거짓을 들추어낸다. “그래요. 당신의 감정은 자연스러울 수 있어요. 하지만 아니예요. 당신은 그런 생각에 지금 갇혀 있는 거예요. 기독교는 초자연적이니까요. 당신은 자유예요.”

사람들은 자신의 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느낀다. 기독교의 회심 교리는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그런 느낌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준다. 설령 긴 싸움이 전개되더라도, 두 걸음을 전진할 때마다 한 걸음(혹은 더) 물러서는 것 같을 때에도, 인격을 새롭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인식하는 데서 변화의 힘을 얻는다.

2. 그것은 당신에게 새롭고 다른 종류의 삶을 그리스도인들에게 확신시킬 수 있는 능력을 준다. 기독교는 성자 하나님의 생명을 제공한다. 우리는 그분의 형상으로 다시 지음받았다. 이 새로운 삶은 거룩과 사랑의 삶이며 하나님의 백성과 연합하는 삶이다. 고난의 삶이다. 하지만 그런 고난 가운데서 부활의 소망과 능력을 아는 삶이다.

놀라운 사실이 여기 있다. 그런 확신은 “거룩하고 서로 연합하라”고 하는 신약 성경의 소위 명령법에만 속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바로 너희의 모습이다”라고 하는 직설법에도 속한다. 새 사람이 있으며 그 새 사람은 그리스도처럼 거룩하다. 

문화적 배경 

이 모든 것과 관련하여 문화적 배경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의 문화는 실제적이며 자연적이며 진정한 것을 선호한다. 자아 발견과 자아 표현이 가장 도덕적인 행동으로 간주된다. 이런 태도가 교회 속으로 침투하여, 회심과 멤버십과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정체성에 관한 개념들을 개조시켰다. 우리 모두가 구도자라고 목사들은 말한다. 우리 모두는 여정 중에 있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한 걸음씩 한 걸음씩 내딛음을 뜻한다. 

하지만 흔히 사용되는 이 목회적 비유의 논리에서 놓치고 있는 것은 과거와 단호히 결별하는 단절 개념이다. 흑암의 영역으로부터 구출된다는, 죽음과 부활의 개념이다. 발견의 여정이라는 개념은 장사됨과 부활의 개념 또는 옛 사람과 새 사람의 개념과는 확연히 다른 것이다. 

인정하건대, 여행은 우리를 변화시킨다. 우리는 여행을 통해 진화한다. 진실을 말하건대, 영적 성장은 애벌레에서 나비로의 급격한 변태 과정보다는 진화진행도표의 점진적 과정과 흡사하다. 내 말은, 그런 표현이 영적 관련성이 전혀 없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신약 성경은 현재 역사 속으로 뚫고 들어오는 종말의 힘에 대해 가르친다는 사실이다. 지금의 새창조, 그것이 회심이다. 

알코올 중독자와 마주 앉음 

우리가 알코올 중독자, 외도의 희생자, 교회를 분열시키는 비열한 집사, 혹은 찬양을 듣기 싫어하는 젊은 부부와 마주 앉아 있다고 하자.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가? 그들이 그리스도인임을 그들에게 상기시킬 필요가 있다. 

로마서 6장에서의 바울처럼, 우리는 그들더러 세례(또는 침례) 받은 사실을 상기시킬 필요가 있다. 그들은 장사되고 다시 살아났다. 그들이 계속 죄 짓기를 원하는가, 자유를 찾기를 원하는가, 용서할 수 있는 힘을 찾길 원하는가, 아니면 세상 사람들처럼 자신의 방식을 계속 고집하길 원하는가? 그들은 죄에 대해 죽었고 그리스도와 함께 새 생명으로 다시 살아났다. 

우리의 목회 사역은 여전히 죄 가운데 있는 신자들더러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어떻게든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요점: 설교하고, 가르치고, 찬송하며, 기도 가운데 하나님을 높이고, 또한 올바른 회심 교리를 알려주라. 이 일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교인들이 이것을 더 많이 이해할수록, 그들을 목양하는 우리의 목회적인 힘은 더 커질 것이다. 그뿐 아니라, 그들은 서로서로 설득하며 구비시키는 더 큰 힘을 지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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