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

본보기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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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1.2010

“본보기는 우리 삶에서 그저 중요한 정도가 아니라 유일하게 중요한 것이다.” 이 문장에서 유명한 의료 선교사이자 저술가인 알버트 슈바이처는 본보기의 중요성과 힘을 확언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 중에는, 일찍이 보았던 어떤 목사나 장로나 다른 그리스도인의 강력한 삶에 영향을 받은 이들이 많을 것이다. “신실한 목사”라는 말을 들을 때 당신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은 누구인가?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을 들을 때 누가 생각나는가? 

물론, 슈바이처의 말은 과장된 것이다. 신실한 삶에는 다른 많은 것들이 결부되어 있으며 그것들 모두가 누군가가 보여준 본보기에 결합된다. 

“멘토링을 통한 성장”은 새로운 개념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신 방식에서부터 이것을 염두에 두셨다.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본보기를 따라야 하며 하나님의 성품을 본받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에서,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을 이해하며 그분과 연관을 맺을 수 있도록 육체를 취하시고 이 땅에 오셨다. 베드로는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다고 말한다(벧전 2:21). 

우리도 본보기를 세우고 본보기를 따르는 이 일에 참여해야 한다. 하나님은 가족 구성원들 속에 태어나 성숙해지도록 사람들을 지으셨다. 우리는 자기발생적인 존재가 아니며, 즉각적으로 다 자란 성인의 모습이로 이 땅에 나타나지도 않는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도록 계획하셨다. 

이는 하나님이 타락한 세상에서 자신을 알리시는 방식이기도 하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은 세상에서 거룩하고 특별한 백성으로 삼기 위해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을 부르셨다. 그들은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하는-하나님의 관심과 가치 기준을 구현하는-사회의 그림을 세상에 보여줄 수 있도록 특별해야 했다. 레위기 19장에서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에게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라고 하신 것은 단지 한 개인에게, 모세나 아론이나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도 말씀하셨지만, 레위기 19장 1절에서 우리는 이스라엘 회중 전체에게 말하도록 모세에게 지시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읽는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규례들은 관계, 평등, 정의, 그리고 사회적 상호작용과 관련된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이 서로를, 곧 상실한 자들과 가장 미약한 자들과 낯선 자들과 어린아이들을 보살필 때 공의롭고 자비로우신 창조주의 성품을 드러낼 것임을 알려주신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가하셨던 주요 질타 사항들 중의 하나는 그들이 바로 본보기 보이는 사역에 실패하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에스겔 5장에서 이스라엘은 실패 사례로 제시되면서 그로써 열방들을 교훈한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다. “이것이 곧 예루살렘이라 내가 그를 이방인 가운데에 두어 나라들이 둘러 있게 하였거늘…내가 이르되 또 너를 황무하게 하고 너를 둘러싸고 있는 이방인들 중에서 모든 지나가는 자의 목전에 모욕거리가 되게 하리니 내 노와 분과 중한 책망으로 네게 벌을 내린즉 너를 둘러싸고 있는 이방인들에게 네가 수치와 조롱거리가 되고 두려움과 경고가 되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5:5,14-15). 에스겔서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하신 일이 그분의 이름을 위해서라고, 즉 그분에 관한 진리가 세상 만민에게 알려지게 하기 위해서라고 거듭 말씀하신다. 

공동체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은 신약의 교회에게 하나님이 의도하신 바이기도 하다. 요한복음 13장에서 예수님은, 우리가 서로에게 보이는 그리스도 닮은 사랑을 통해 세상이 우리가 그분의 제자임을 알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게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라고 썼다(엡 5:8). 

개인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을 통해, 그리고 교회로서 함께하는 삶을 통해, 우리는 이 어둡고 절망적인 세상에서 하나님의 소망의 빛을 비춘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통해, 우리는 서로에게 그리고 주변의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에 대해 가르친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게 된다. 반면에,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요일 4:20). 우리는 자신의 거룩성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보여준다. 우리는 우리의 타락한 본성과 주변 세상이 우리를 유혹해서 따르게 하는 이기적인 좌절의 삶과는 다른 삶의 방식이 있다는 소망을 사람들에게 제시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동료 목사와 장로들이여, 우리 교회들에서는 지켜보는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에 대해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사역에만 제한되신다고 그들에게 가르치고 있는가? 죄와 불충함을, 인색하며 다툼을 가져오는 자기 위주의 삶을 하나님이 용납하신다고 가르치고 있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기 위한 공개적인 진열장, 쇼윈도우, 광고, 웹페이지가 되는 위대한 임무와 특권을 감당하도록 사람들을 얼마나 진지하게 지도해 왔는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얼마나 놀라운 특권을 주셨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얼마나 하찮게 여기는가. 우리는 만일 우리 교회에 교인들이 더 많아지면 우리가 기존의 교회 구성원들에 대한 책무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도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사람들 각자 각자가 현재 증언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진정으로 회심한 자들의 신실한 증언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얼마나 많은 나쁜 증언들을 극복하기 위해 수고해야 할까. 

교회 권징은 궁극적으로 최종 입증이나 보복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런 일들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며 우리 같은 죄 사함 받은 죄인들에게 맡겨진 일이 아니다(신 32:35; 롬 12:19). 다만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다른 사람들에게 잘 증언하는 일에 관심을 갖는다. 우리는 삶과 행실에 있어 모범적이어야 한다. 서신서들에서 바울이 장로가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서 얻어야 할 평판에 특별한 관심을 보이는 것과 같다. 그렇게 한 이유들은 여럿일 수 있지만, 한 가지 분명한 이유는 장로가 세상 사람들에게 교회를 대표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전체로서의 교회도 그러해야 한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5장에서 몹시 화를 냈던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바울이 누구에게 분노를 표했을까? 그는 성적 죄악을 범한 사람을 꾸짖지 않았다. 그보다는 그런 죄인을 구성원으로 허용하려는 교회를 신랄하게 질책했다. 교회 구성원들 중에는 처음에 신앙고백을 제대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중에 죄에 빠지는 이들이 있다고 하는 서글픈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들 중 일부는 회개하고 다시 돌아올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거룩함을 옹호하고 죄에 대항함으로써 하나님을 대변하는 교회의 공동 책무를 느슨히 해서는 안 된다. 고린도 교회를 향한 바울의 예리한 질책에서 문제 삼고 있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우상숭배에 빠진 구약 이스라엘의 죄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친구들이여, 사도 바울이 우리 교회들에 대해 무엇을 말하려 했겠는가?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것을 우리는 사랑의 이름으로 얼마나 용납하는가? 우리 교회에서 간음 관계나 비성경적인 이혼을 눈감아 줌으로써 세상을 향해 “우리도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아”라고 외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작은 문제들로 교회를 갈라지게 하는 분열적인 사람들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허용하는가? 얼마나 많은 거짓 복음들을 교회에서 허용하는가?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만일 여러분이 목사나 장로나 리더나 교사나 교회의 일반 구성원으로서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우리의 중대한 책임을 생각하라. 하나님을 가장 잘 증언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라. 우리 중의 죄를 무시함으로써일까? 갈라디아서 6장 1절에서 바울이 권하듯이, 죄에 붙들린 사람들을 온유하게 권유하여 회복시키려는 노력을 통해서일까? 어떻게 하는 것이 우리가 예배하는 하나님을 더 잘 반영할까? 하나님의 자비가 그분의 말씀에서 가르치는 그분의 거룩하심을 흐릿하게 하는가? 그분의 교회에서는 어떠한가? 이 문제에서 우리에게 맡겨진 청지기 사명은 무엇인가? 

주변 세상을 위해 당신이 보이고자 하는 본보기에 주의하라.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과 그분의 세상을 위해 위대한 계획을 지니고 계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말과 삶을 통해 그것을 보이도록 우리를 부르신다. 당신은 그 일을 하고 있는가? 우리 각자가 이 위대한 소명에 충실하도록 하나님이 도와주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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