멤버십 & 권징

교회 재활성화에 대한 마크 데버와 조나단 리먼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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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3.2015

조나단: 마크, 교회 재활성화에 대해 이야기해 봅시다. 그러기 위해, 나는 ‘캐피톨힐 침례교회’(이하, CHBC)의 “이전과 이후”의 사진(과거의 스냅 사진과 현재의 스냅 사진)을 보길 원합니다. 

마크: 1993년, 내 앞에 있던 전임 목사는 그리 좋지 않은 상황에서 사임했어요. 회중은 당시 미국의 살인 수도(murder capital of America)로 여겨졌던 도시 한 가운데에 있었습니다. 1960년대 이후로, 사람들이 도시 외곽 지역으로 이사를 갔고 그로 인해 도심의 많은 교회들이 쇠퇴했습니다. 장소를 옮기거나 건물을 매각하고서 문을 닫는 교회들이 많았어요. CHBC도 다르지 않았죠. 회중들은 연로해졌습니다. 

조나단: 그 당시 교회는 어떠했나요? 

마크: 앞서 말했듯이, 교인들이 주로 연로한 분들이었고, 건물은 수리해야 했어요. 하지만 교인들이 신실했죠. 그들은 주님을 사랑했어요. 그들이 좋은 가르침을 받았다고 말하기는 어려워요. 그들은 오랫동안 목사들이 자주 바뀌었어요. 20세기 상반기에는 한 목사가 오랫동안 시무했으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로는 약 5년마다 목사가 바뀌었죠. 그 목사들은 아마도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복음주의적이었어요. 그들은 모두 성경을 믿는 사람들이었죠. 

나는 회중이 다른 무엇보다도 식사, 특정한 종류의 음악, 프로그램, 활동 등과 같은 문화적인 것들에 집착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들이 예배당 건물의 위치를 중요하게 여겼다고 생각해요. 아시다시피, 교회 건물은 대법원과 국회 의사당으로부터 불과 몇 블록 떨어진 거리에 있어요. 그래서 회중들은 교회가 복음 전도를 위해 특별한 의의를 지닌 곳에 위치해 있다는 생각을 지니게 되었어요. 

이 때문에, 그들은 제단 초청과 같은 것을 활용하는 빌리 그레이엄식의 복음 전도에 큰 관심을 가졌어요. 그리고 선교사들이 있었는데, 그들 중 대부분은 그 교회의 목사이자 선교 활동의 큰 부흥을 주도했던 한 컬럼비아 대학교 졸업생의 주관 하에 1950년대에 파송되었어요. 그래서 나는 신실함의 긴 역사 속으로 들어섰습니다. 

조나단: 당시에 정규 출석 인원은 어느 정도였나요? 

마크: 약 130명이고, 그들 중 대부분은 70-75세였어요. 

조나단: 20여 년이 지난 지금, CHBC의 모습은 어떠한가요? 

마크: 이제 회중들은 교외에 살지 않고 이곳 교회 건물 주변에 살아요. 최근의 집계에 따르면, 교회 멤버들 중 55%가 예배당으로부터 1마일 내에 살고 있어요. 내가 여기 왔을 때, 1마일 내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어요. 내 앞에 있던 전임 목사들마저 대부분 버지니아주 어딘가에 있는 목사관에서 거주했습니다. 

또한 지금은 회중 가운데 젊은이들이 많아요. 현재 평균 연령은 30세 정도일 겁니다. 우리는 좌석 수를 최대한 늘렸고, 현재 주일 오전 예배 참석자가 1000명 정도 되고, 기본적으로 건물에 사람이 꽉 찹니다. 

제가 이렇게 말해도 될까요? 성도가 많은 교회는 다른 교회들을 잘 도와줄 수 있다고 말입니다. 왜냐하면 예배당이 교인들로 가득 차면, 우리 교회가 주변에서 유일하게 좋은 교회라고 선전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회중들에게 거주지에서 가까운 교회로 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해당 지역에서 다른 좋은 교회들을 찾거나, 좋은 교회가 없으면 좋은 교회가 되도록 도울 수 있어요. 

조나단: 그래서, 복음 전도와 선교도 변했나요? 

마크: 내 생각에, 복음 전도는 별로 변한 게 없어요. 우리는 더 이상 제단 초청을 하지 않지만, 나는 설교 중에, 전임 설교자들도 다 그랬던 만큼, 사람들의 회개와 믿음을 촉구하고자 합니다. 나는 종종 이런 식으로 말하죠. “만일 여러분이 이 자리에 있으면서 아직 신자가 아니라면, 그렉 길버트의 책 『예수님은 누구신가?』(Who Is Jesus?)를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우리는 그런 책을 통한 결실을 기대하고 있어요. 

조나단: 개인 전도는 어떤가요? 멤버들이 복음을 더 많이 전하고 있나요? 아니면 그 반대인가요? 

마크: 글쎄요. 단언할 순 없지만, 더 많이 전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처음 여기 왔을 때, 이 교회는 “행사” 문화에 초점을 많이 맞추었어요. 우리는 라디오나 신문의 광고를 통해 사람들을 초청하거나, 사례비를 받는 전문적인 강사더러 복음을 전하게 하는 큰 행사를 개최하여 사람들을 모으곤 했죠. 

그러나 나는 교인들로 하여금 복음을 전할 책임이 그들에게 있음을 깨닫게 하려고 노력하며 사랑의 마음으로 기도해 왔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잘 알도록 교회 멤버들을 준비시켜서 그들의 입술에서 복음이 곧바로 나오게 하길 원해요. 우리는 그들이 복음을 잘 이해해서 대화 중에 복음을 능숙하게 이야기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복음이 보다 쉽게, 보다 자연스럽게 나오게 하길 원하죠. 

그리고 선교에 대해 말하자면, 우리는 지원하는 선교사들의 숫자를 줄였고 선교사 한 명당 지원금은 늘렸습니다. 

조나단: 그렇게 하면 어떤 이점이 있나요? 

마크: 우리는 선교사들이 후원금 확보에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신뢰할 만한 선교사인 경우에, 1년에 500불이 아니라 35,000불이나 70,000불을 줍니다. 교회 스태프처럼 여기는 것이죠.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선교 일에 자유롭게 전념하고, 우리와의 관계도 분명해집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우리는 그들에게 분명한 책임감을 갖습니다. 

조나단: 교회 “문화”라는 모호한 주제를 다루어 봅시다. 과거와 현재 사이의 문화적 변화를 다른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나요? 

마크: 내가 전에는 이 교회에 소속되지 않았으므로 뭐라고 말하기가 어려워요. 내가 여기서 만난 회중은 남부 시골풍의 매우 친절하고 손님 대접을 잘하는 사람들이었어요. 일부는 실제로 남부 시골 출신이었죠. 그러나 지금은, 우리 교회를 특징짓는 환대는 문화적인 기준으로 쉽게 설명되지 않아요. 지금은 우리와 공통되는 점이 거의 없는 사람들에게도 종종 베풀어지는 사려 깊은 환대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대화가 주로 가족이나 미식축구에 대한 내용이었던 반면에, 지금은 설교, 제자화 관계, 복음 전도 기회, 신앙에 대한 질문, 죄에 대한 투쟁 등에 대한 대화도 많이 나눕니다. 나는 이 모든 대화가 솔직하게 나눠지기를 바랍니다. 

조나단: 자, 목사님은 이 교회를 21년째 섬기고 있습니다. 목사님은 “교회를 재활성화하는 자(church revitalizer)”인가요? 스스로를 그렇게 부를 수 있나요? 

마크: 분명 나 자신을 그렇게 불러왔고, 다른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부르는 경우는 훨씬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분명 나는 교회 재활성화를 지지합니다. 하지만 “재활성화하는 자”라는 표현은 잠재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는 그것이 후임 목사가 될 사람에 대해 거의 생각하지 않고서 우리의 사역에 분명한 성공이 있음을 미리 가정하는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나는 “교회를 재활성화하는 자”라는 호칭이 과연 좋은 호칭인지 모르겠습니다. 분명 우리는 재활성화하는 자이길 갈망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교회를 재활성화하고 부흥시키길 갈망합니다. 그러나 미리 앞서서 “나는 교회를 재활성화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자신감 과잉이자 교만입니다. 우리는 교회 재활성화를 갈망하고 바란다고 말할 수 있으며, 그것을 위해 일합니다. 

예전에 어떤 사람들이 내게 이렇게 물었어요. “CHBC에서의 사역은 복제가능한가요?” 결국, 그것은 내가 사람들에게 종종 들어온 다음 비판과 같은 말입니다. “마크는 좋은 사람이지만, 자신이 사역에 은사를 받은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어. 그는 아홉 가지 표지 때문에 성공했다고 생각하고 계속 그것에 대해 말하지만, 실제로는 주님이 그에게 복주셨을 뿐이야. 그는 이 가련한 사람들더러 아홉 가지 표지에 대해 잔뜩 기대감을 갖고 흥분하게 만들지만 그들에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아.” 

나는 그들의 말을 적어도 어느 정도는 이해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다음 세 가지에도 주목하길 원해요. 

첫째, 만일 내가 사도행전 6장에서 사도들이 했던 것처럼 기도와 말씀 사역에 몰두하고 있다면, 그것은 분명 복제가 가능합니다. 나 또는 이 교회에만 해당하는 독특한 것은 전혀 없어요. 

둘째, 우리가 교회로서 하는 일(사역, 우리의 신학, 교회와 교회정치 및 멤버십에 대한 이해에 헌신하기) 모두는 분명 복제가 가능해요. 이 교회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독특한 건 전혀 없어요. 

하지만, 셋째로, 만일 어떤 사람이 “복제가능하다”라는 말을 “만일 당신이 이 일들을 행한다면 이 분명한 축복이 어디서든 반드시 일어난다”라는 뜻으로 이해한다면, 나는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런 의미로는 아무 것도 복제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손을 벗어나 있고 성령님께 달려 있습니다. 나는 한 번도 “우리가 강해 설교를 하기 때문에 우리 교회에 사람들이 가득하고 언제나 사람들이 구원을 얻고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할 유혹조차 받지 않아요. 왜냐하면 나보다 설교를 더 잘하고 나보다 교회 권징에 대해 더 신경쓰는 목사들이 있지만, 그들의 교회가 다 사람들로 가득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성령 하나님의 축복이죠.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어요. “보라! 이 위대한 부흥이 보이는가? 나는 어떻게 이러한 일이 일어났는지를 리버스 엔지니어링(reverse engineering)을 통해 알아낼 것이며, 그래서 이 비상한 축복을 누릴 수 있도록 비상한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비상한 축복을 원하고 그것을 간구하며 또한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전적으로 옳은 일이지만, 우리가 노력하고자 하는 방식은 거대한 기도 집회나 통상적이지 않은 특이한 일들이 아닙니다. 매일의, 매주의, 정규적인 은혜의 방편들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는 것이며 그것은 세례(또는 침례)와 성찬(또는 주의 만찬)이며, 그것은 지역 교회의 멤버가 되는 것이며, 그것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해야 하는, 그리고 하나님이 비상한 방식으로 축복하시는 보통의 일들입니다. 그러므로 내 생각에, “재활성화”는 새 목사가 부임하는 어떤 교회들에 하나님이 무엇을 하고자 하시는지 묘사하기 위해 지난날을 뒤돌아본 후에야 비로소 사용할 수 있는 표현입니다. 

조나단: 지난날을 되돌아봤을 때, 하나님이 이 교회를 재활성화해 오셨나요? 

마크: 어떤 면에서는 분명 그렇지만, 내가 이 교회에 오기 전에는 이 교회가 전혀 활력이 없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아요. 이 교회는 복음주의적이었고 복음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사회학적으로나 인구통계학적으로 어려운 상황들이 있었고 그 와중에서도 교회가 신실하게 대응했어요. 그러나 분명히, 많은 외적 방편들에 있어, 교회는 재활성화되어 왔어요. 

하지만 바울이 고린도인들에게 말한 것처럼,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십니다. 따라서 만일 당신이 재활성화하는 주체를 굳이 식별하고자 한다면, 그 주체는 하나님이실 것입니다. 그분이 재활성화하는 분이셨습니다. 

조나단: 당신은 교인들 스스로 재활성화에 참여하게 하는 전문적인 목회자라고 요약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마크: 네, 근사한 말입니다. 나는 교회 재활성화 센터(center for church revitalization)에 그리고 NAMB(North American Mission Board)의 교회 개척국에 매우 감사합니다. 이 모든 새로운 강조점들로 인해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이들은 어려운 상황 가운데 목사들이 신실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줍니다. 단지 나는 우리가 사용하는 명칭과 단어들 그리고 그 이면에 있는 일부 가정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을 뿐입니다. 

“나는 할 수 있다!”라는 생각 안에는 교만이 들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일을 하시는 분은 성령이시기 때문이죠. 당신은 새로 부임한 교회에서 부흥이 일어나기를 기도할 수 있어요. 당신은 한 주간 동안 매일 밤 밥(Bob)이 설교하는 신앙 부흥 전도 집회를 기획할 수 있어요. 하지만 성령님께서 170명이 아니라 17명이라도 구원하시도록 당신이 기획할 수는 없습니다. 

당신이 어떤 수치에 의해 어떤 것의 효율성을 평가하기 시작할 때, 그때 당신은 잘 생긴 사람들이 앞으로 걸어 나가서 세례(또는 침례)를 요청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거기에 동참하고 결단을 해야 할 것 같은 심리적 압박을 느끼게 하는 남부의 대형 교회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하지만 그런 것은 반()복음적입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교회가 자신이 비그리스도인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 생각에, 그 교회는 자기들이 인식하는 것보다 훨씬 더 철저히 비그리스도인을 위해 존재하고 있어요. 

달리 말해서, 재활성화를 위한 우리의 논의가 너무 수치적 평가기준 위주여서는 안 될 것입니다. 

조나단: 목사님의 경험을 조금만 더 들어봅시다. 그 교회에 처음 부임했을 때, 일을 어떻게 시작할지에 대한 전략을 세우셨나요? “당신의 비전이 무엇입니까?”라는 표현이 종종 사용되죠. 목사님의 비전은 무엇이었나요? 어떤 전략이 있었나요? 

마크: 설교하라, 기도하라, 일하라, 그리고 계속 있으라는 것입니다. 

나는 말씀을 설교하기를 원했고, 주중에 설교 내용을 실천하려고 진지하게 노력했어요. 나는 매일 정기적으로 기도하길 원했습니다. 특히 모든 멤버 하나하나를 위해 기도하려고 했어요. 나는 교인들을 사랑하며 개인적인 관계를 든든히 맺기를 원했어요. 나는 그들을 제자화하길 원했어요. 

그리고 끝으로, 나는 기꺼이 그 교회에서 영원히 남아 있기를 원했습니다. 당신이 새로운 일을 이끌 때, 나이 많은 분들 안에서 그런 일이 잘 일어날 가능성은 많지 않을 겁니다. 아마도 이미 그 지역에 정착된 가족들을 통해 성장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들이 최근에 타지에서 이주해왔다면 몰라도. 

대신에, 삶의 전환기에 놓인 사람들 가운데 성장이 있을 것입니다. 직업 때문에 이사 오거나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 그런 부류입니다. 따라서 교회가 성장하기 시작할 때, 젊고 지역적 연고가 별로 없는 사람들 가운데 성장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물음이 제기되죠. “이런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하면 유출입 없이 안정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그런 사람들로 이루어진 회중이 될 수 있을까?” 교회가 지속적이며 완전한 증언에 도달하는 데에는 긴 시간이 걸립니다. 5년이나 10년 동안 출석하는 교인들도 있고, 주님은 그들도 당신을 돕는 방편의 일부로 사용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이 올 것이며 그들은 수십 년 동안 머물 것입니다. 20년 동안 이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들은 교회에서 많은 친구들과 작별했던 아픔을 내게 토로할 겁니다. 나는 그들의 말이 진심인 것을 알아요. 나 역시 같은 일을 겪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말에 공감하죠. 나는 그것을 멤버 등록에 따른 대가로 여깁니다. 

따라서 그런 상황에서 나는 냉담해지거나 마음 문을 닫거나 어떤 부정적인 생각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많은 사람들이 5년이나 10년 후에 떠나가더라도 우리는 감정적으로나 다른 모든 면에서 잘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꺼이 오래도록 머무르는 사람들이 정말 필요합니다. 나는 이 “머무름” 요소가 매우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종종 간과된다고 생각합니다. 

조나단: 목사님은 사업가보다는 아버지 같은 말씀을 하시는군요. 교회 성장에 대한 사람들의 대화를 들어보면 사업가처럼 수치에 집착하는 인상을 받을 때가 많아요. 하지만 목사님은 여러 시즌과 여러 단계들을 거쳐 자녀를 목양하는 것에 대해 말씀하고 계시네요. 

마크: 목사들이 사역을 사업으로 격하시킬수록, 그들은 더욱 더 CEO처럼 생각하게 되며 목자처럼 생각하는 일은 점점 더 드물어지게 됩니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더 큰 리그에서 뛰고 싶기 때문에 더 큰 플랫폼이 필요해.” 

하지만,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그 대신에 “이야, 밥(Bob)은 복음에 대해 따뜻한 마음을 지닌 것 같아. 나는 그가 힘든 상황에서도 사람들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하는 걸 지켜보며, 그가 상황이 변해도 변함없이 지속적으로 사람들을 희생적으로 사랑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어. 하나님께 큰 영광이 될 거야.”라고 생각하는지 여부가 시금석입니다. 당신은 영적인 성장을 어떤 수치로 쉽게 환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생각은 사람들 중 일부를 좌절하게 만들 거예요. 하지만 장로들은 이 모든 일을 긴 안목으로 보면서 하나님이 최종적으로 평가하실 것임을 알고 있을 정도로 성숙한 사람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조나단: 목사님의 사역 초기에 어려움을 가져온 이슈들은 무엇인가요? 

마크: 교회에 복수의 장로가 없었기 때문에 많은 이슈들이 심각한 어려움을 불러왔어요. 만일 복수의 장로들이 있었다면 교회가 더 평온했을 거예요. 당시에는 확실한 권한을 가진 사람이 나 하나였기 때문에 많은 도전들이 위협적이었어요. 

내게는 그런 상황이 교회의 건강한 모습으로 보이지 않았어요. 결국 교회에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죠. 또한 그런 상황이 성경적이라고 생각되지도 않았어요. 그때 어려움을 가져왔던 이슈들을 구체적으로 언급할 수도 있지만, 사실 핵심은 그 이슈들이 아니었어요. 쓸데없이 어려운 도전에 직면하게 했던 것은 바로 교회의 구조였어요. 

조나단: 배가 방향을 바꾸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던 지점들이 있었나요? 

마크: 장로가 저 한 사람뿐이었다가 여섯 명으로 늘어났을 때, 바로 그때가 티핑 포인트였어요. 그것은 교회와 저에게 큰 활력이 되었죠. 그 후에는 어떤 결정이 내려졌을 때, 누구도 교회의 방향이나 연합을 위협하기가 훨씬 더 힘들어졌어요. 

조나단: 만일 당신이 재활성화를 필요로 하는 교회로 가려 하는 젊은 목사에게 “꼭 해야 할 일”의 목록을 제시한다면, 어떤 내용일까요? 

마크: “좋은 설교를 하라. 자격 있는 여러 명의 장로들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라. 교회의 멤버십에 유의하라.”입니다. 

조나단: 미국 상황과 관련된 말씀인가요? 아니면 어느 곳에나 적용되는 말씀인가요? 브라질이나 아프가니스탄이나 일본에 있는 교회들에도 해당하는가요? 

마크: 어떤 문화권이든 이것은 성경을 신실하게 반영하는 내용일 겁니다. 세계의 어느 곳에서든 그럴 거예요. 

조나단: 당신이 범한 실수들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그 실수들을 통해 배운 교훈은 무엇인가요? 

마크: 분명 나는 어떤 도전이 어느 정도의 대가를 요하는지를 항상 정확히 판단하진 못했어요. 여성 사역에 대해, 소그룹에 대해, 라디오 사역에 대해, 시니어 여성 주일학교 강좌에 대해, 수요일 저녁 식사모임에 대해, 미국 국기와 기독교기에 대해, 나는 어떤 답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뭐, 더 많이 열거할 수도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나는 많은 이슈들에 대해 단 한 개의 가격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사실 가격표는 내 생각과 달랐습니다. 보통은 내 생각보다 훨씬 높은 가격표가 붙어 있었던 것입니다. 복수의 장로들이 있었으면 훨씬 더 잘 판단할 수 있었을 겁니다. 

종종 나는 젊은 친구들은 매우 예리한 판단을 갖고 있지만 인식의 깊이가 부족하다고 말해요. 그게 나였어요. 나는 뚜렷한 비전을 지녔고,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력을 지녔지만, 거기에 도달하는 방법을 몰랐어요. 젊은이들은 이런 면에서 그들을 도와줄 나이 많은 사람들을 필요로 하죠. 

조나단: “내리막으로 향하는 교회를 위로 끌어당기는” 일에 적합한 사람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나요? 

마크: 교회마다 상황이 다르겠지요. 그러나, 투사 기질이 있는 사람, 즉 분명하게 맺고 끊는 성격이 강하다면, 그리고 그의 아내도 그 점을 인정한다면, 그 사람은 교회를 개척하거나 이미 건강한 교회로 가는 게 더 나을 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입니다. 만일 매우 심각한 변화를 필요로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면, 그는 그릇된 것을 지적하기보다는 좋은 점을 먼저 칭찬할 필요가 있어요. 그러한 인자함이 하나님의 은사로서 그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주어져 있지 않거나 그 사람의 심령 속에 작용하고 있지 않다면, 그렇게 하기가 힘들 것입니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들은 다분히 교조적입니다. 그들은 이것 아니면 저것일 뿐이죠. 

조나단: 그 두 가지가 무엇인가요? 

마크: 옳음과 그릇됨이죠. 나는 매주 질문들을 받지만, 나의 대답은 “모르겠어요”입니다. 그게 진심이거든요. 내가 모른다고 대답할 때마다, 내가 하나님이라고 하는 몹쓸 착각을 쫓아내는 것이죠. 

조나단: 마지막 질문입니다만, 이 재활성화 사역이 당신의 아내와 자녀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사람들이 이와 관련하여 고려할 사항은 무엇인가요? 

마크: 만일 당신이 아내와 자녀에 대해 예상하는 바가 있다면, 당신은 그것들이 가능한 한 가시적으로 드러나길 원할 것입니다. 그래야만 당신은 그것들을 분명히 인정하거나 거부하거나 할 수 있겠죠. 당신의 아내는 당신을 놓고서 당신의 일과 경쟁 관계에 있다고 느껴선 안 됩니다. 당신의 일이 교회인 경우에는 특히 그렇습니다. 당신의 교회는 다른 목사를 구할 수 있지만, 당신의 아내는 다른 남편을 구할 수 없어요. 심지어 당신의 아내보다 당신이 그 점을 더 잘 이해할 필요가 있어요. 

당신의 아내가 동승하고 있어야 하는 이유는, 교회를 향한 그녀의 애정을 소외시킨 데 대해 핑계대길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모든 비난을 가능한 한 많이 자신의 어깨에 지우길 원할 겁니다. 

남편들은 장기적인 안목을 지닐 필요가 있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주님이나 교회에 대한 아내의 관계가 위태로워질 수 있어요. 따라서 당신이 교회 성장의 초기 단계를 지나고 있을 때에는 그런 종류의 지혜를 필요로 합니다. 결국, 가족에게 있어서는 교회 재활성화의 성공이 실패보다 더 힘듭니다. 왜냐하면 그 성공은 분명히 당신에게 당신의 시간을 차지할 수 있는 점점 더 많은 좋은 것들을 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족은 그렇게 작동되는 것이 아니죠. 번성하고 성공을 거둘 수도 있지만, 대체로 그것은 많은 고투를 동반해요. 승리는 속히 얻어지는 것이 아니며, 그래서 어떤 사람이든 이렇게 말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죠. “나는 이런 유형의 결과와 피드백을 볼 수 있는 곳으로 되돌아가야겠어. 여기서는 나는 그저 당연시되는 것 같고 내가 원하는 식으로 작동되는 일이 없어.” 

교회 개척자나 새로 부임한 목사에게는 재활성화가 매우 강력한 올가미일 수 있어요.

편집자 주: 이 아티클은 서던 신학대학원(Southern Seminary)의 A Guide to Church Revitalization의 한 장을 개작한 것이다.

 

이 아티클은 개혁된실천사가 번역하여 제공한 것입니다. 유사한 자료를 위해 그들의 웹사이트를 방문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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