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는 왜 필요한가?

으로 Brad Wheeler | 06.15.2015

지난주에 나는 우리 교회의 주일 예배 메시지를 준비하는 데 약 25시간을 할애했다. 사무엘상 9-11장에 근거한 메세지였기에 설교라고 부를 수 있겠다. 이 설교 중에, 나는 전체 본문을 읽은 다음에 40분 동안 그 의미를 설명하고 또한 그것을 회중에게 적용했다. 따라서 그것은 강해설교라 할 수 있다. 나는 계몽주의 이전 시대의 영국에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며, 그 설교는 교회 […]

의미 있는 설교를 위해 교인들에 대해 잘 아는 것이 중요한 이유

설교자가 천천히 왔다갔다하면서 회중을 주시했다. 매주 있는 결신 초청의 시간이었다. 그는 회중더러 손을 들어 응답할 것을 권했다. 한 사람도 손을 들지 않았다. 하지만 설교자는 그 사실을 알 길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비디오 스크린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목사의 지시에 따라 그 멀티사이트 교회의 여러 예배당 중 가장 가까운 예배당에서 예배드리고 있었다. 최근에 나는 그 […]

초대교회 이후로 설교가 변했나

으로 Peter Sanlon | 06.01.2015

정규적이며 체계적인 성경 강해설교는 교회 사역을 위한 나의 비전에 있어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회중에게 성경의 책들을 순서대로 두루 설교하면서, 나는 내가 모세오경과 유대교적 교수 방법과 사도적 교회에 뿌리를 둔 방식과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고 믿는다. 여기서는 강해설교의 이 같은 개화기들의 특성을 일일이 설명할 수는 없다. 다만 성경 기록 후의 초대교회 설교가 우리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 살펴보고자 […]

책을 읽기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성경은 너무 복잡한가?

으로 Andy Prime | 01.01.2015

나는 18세 내지 19세 때 책 읽는 법을 배웠다. 제대로 읽는 법을 배웠다는 뜻이다. 그 전에는, 내가 읽는 것이라곤 고작 식당의 메뉴나 TV에 나오는 미식축구 경기 결과 정도였다. 그러나 18, 19세 때 나는 어떤 책 한 권을 읽고서 정말 좋아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책 전체를 읽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존 오웬이라는 엄청나게 […]

지역 교회란 무엇인가?

지역 교회는 복음 설교와 복음 규례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나라 안에 있는 서로의 멤버십을 공식적으로 확언하며 감독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정규적으로 모이는 일단의 그리스도인들이다. 다소 투박한 정의라는 것을 나도 알지만, 이 정의 속에 담긴 다섯 가지에 주목해 보라:  일단의 그리스도인들 정규적인 모임 전 회중적 확언과 감독의 행사 이 땅에서 그리스도와 그분의 통치를 공식적으로 나타내는 […]

성경신학과 공예배

으로 Bobby Jamieson | 08.20.2014

우리가 예배를 위해 교회로서 함께 모일 때 우리는 정확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매주 그렇게 모이는 모임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복음주의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이 물음들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성경으로 눈을 돌린다. 그러나 성경의 어느 곳을 보는가? 구약성경은 예배에 대해-기도와 희생제사와 찬양대와 악기 등에 대해- 많이 언급한다. 하지만 이 모든 내용이 새 […]

성경신학과 섹슈얼리티 위기

으로 Al Mohler | 08.20.2014

요즘 서구사회는 도덕적 혁명이라 묘사될 수 있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도덕률과 특정 문제에 대한 집단적인 윤리적 평가는 가벼운 수정이 아니라 완전한 반전을 보여 왔다. 한때 정죄되었던 것이 이제 찬사를 받고, 이제 그러한 찬사를 거부하는 것이 정죄된다. 지금의 도덕적, 성적 변혁을 예전의 도덕적 변혁과 다르게 만드는 것은, 전례 없는 변화 속도이다. 예전 세대들은 수십 […]

성경신학과 복음 선언

으로 Jeramie Rinne | 08.20.2014

강해설교가 일관되게 복음전도적일 수 있을까? 때로는 설교자들이 성경의 책들을 강해하기를 꺼린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 접근법이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신학을 가르치기에는 좋지만 복음을 이해하도록 불신자들을 돕는 데에는 좋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목사들이 구약성경에 대한 설교를 구상할 때 이런 생각을 점점 더 많이 하게 된다. 아브라함의 삶이나 학개서에 나오는 이야기를 매주 공부함으로써 복음을 명확히 드러낼 수 있을까? […]

설교자로서 자기 자신이 되는 법을 배우기: 필자는 지금도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으로 Kevin DeYoung | 06.12.2014

필립 브룩스가 설교를 가리켜 “개성을 통한 진리 전달”이라고 정의했을 때, 나는 그가 다른 누군가의 개성이 아니라 설교자 자신의 개성에 대해 말한 것이라고 믿는다. 한 동안의 기간이 지난 후에, 마침내 나는 설교단에서 나 나름의 설교를 하는 법을 배운 듯한 느낌을 받게 되었다. 그것이 내 설교가 더 좋아지거나 나빠졌음을 뜻하는지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나 자신의 […]

번영복음의 다섯 가지 오류

으로 David W. Jones | 01.15.2014

100여 년 전에, 당시 가장 큰 교회에서 설교했던 찰스 스펄전은 이렇게 말했다. 그리스도인이 재산 축적을 목표로 삼는 것은 반기독교적이며 악한 삶이라고 나는 믿습니다. 여러분은 “우리는 가능한 한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 기울여야 하지 않습니까?”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렇게 살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여러분이 하나님의 일을 할 수도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나도 동의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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