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삶

청소년 사역을 위한 여섯 가지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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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8.2014

“자네 교회에서는 고등학생들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지?” 한 목사 친구가 최근에 이렇게 물었다. 

나는 청소년에 대해 특별한 전문 지식이 없으며, 어느 정도 프로그램상의 융통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당신은 주간 행사를 개최하는가? 누구를 위한 행사인가? 행사 때 무엇을 하는가? 특별한 프로젝트나 야외 행사? 이 모든 것은 당신의 재량에 달렸다. 

하지만 무엇을 하든 우리가 유의해야 할 몇 가지 성경적인 원칙들이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많은 청소년 그룹들이 이 원칙들에 유의하지 않는 것 같다. 

1) 무엇을 하든지, 교회와 세상 간에 분명한 경계선을 유지하라 

예수님, 바울, 베드로 등은 우리가 14세이든 84세이든 교회와 세상 간에 분명한 경계선을 그어야 함을 강력하게 주장한다(예, 마 18:15-20; 고후 6:14-7:1; 벧전 2:9-12). 이것은 구시대적인 말인가? 하지만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이 당신의 이름으로 일컫는 자들에게 깊은 관심을 보이셨듯이, 신약에서 예수님은 당신의 이름으로 일컫는 자들에게 관심을 보이신다(예, 겔 36:20-27,36; 마 18:20; 28:19; 참조, 고전 5:4). 

청소년 사역에서는 이 경계선을 흐릿하게 하려는 유혹이 따른다. 사역 현장에서는 교회 다니는 아이들과 다니지 않는 아이들이 섞여 있다. 어떤 아이들은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고 어떤 아이들은 안 그런다. 하지만 누가 정말로 바르게 알겠는가? 

바로 이 점이 요점이다. 이 때문에 어떤 교회들은 청소년에게 세례(또는 침례)를 주지 않는 편을 선호한다. 이것은 우리가 고려해볼 수 있는 지침이다. 당신이 이 입장에 동의하든 않든, 당신의 말과 프로그램과 방법들이 청소년들로 하여금 “교회가 있고 세상이 있음”을 이해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되게 하라. 십 대들을 가장 잘 사랑하는 방법은, 이 경계선의 어느 편에 설 것인지를 정하는 것이 그들 앞에 놓인 가장 중요한 결정임을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다. “너는 누구 편에 설 것인가?” 

따라서, 청소년 사역을, 교회 멤버십의 통상적인 규칙, 기대, 정체성 등이 적용되지 않는, 교회의 분리된 영역으로 다루지 말라. 그 대신에 다음과 같이 하라. 

2) 청소년들에게 세례(또는 침례)를 준다면, 그들을 성인처럼 대하라 

내가 청소년들에게 세례(또는 침례)를 줄 것을 권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렇게 해야 한다는 확신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그렇게 한다면(그리하는 사람들이 많은 줄로 안다) 그들을 성인 그리스도인들처럼 대해야 한다. 그들은 세례(또는 침례)를 받음으로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다(마 28:19). 따라서 그들은 온 교회와 더불어 하나님 가족으로서의 책임이 있다(마 18:20; 고전 5:4-5). 그들은 몸의 일부이며, 따라서 몸을 보살피는 일에 협력해야 한다(고전 12:21-26; 참조, 고후 2:6). 

그들은 교인 총회에서 투표권을 행사해야 한다. 고등학생으로서 파티 문화에 빠져 있거나 회개하지 않고 계속 죄를 범하는 삶을 시작하면 교회의 권징을 받아야 한다. 교회의 주요 회의에 참석하며 교회를 위해 기도할 것을 그들에게 요구해야 한다. 그들은 성찬(또는 주의 만찬)에 참석하기 전에 깨진 관계를 회복하도록 요구받아야 한다. 그들은 장로의 감독 아래에 있을 필요가 있다. 

결국, 성인 멤버십에 부여되는 책임을 모두 진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기본적인 책임을 지는 것을 뜻한다. 예수님은 그분의 양들 모두가 한 가족임을 유의하고 서로를 보살피고 사랑 안에서 서로를 세우며 화평케 하는 자가 되기를 바라신다. 청소년들에게 달리 가르쳐선 안 된다. 

청소년에게 세례(또는 침례)를 주어 교회 멤버십 안에 들어가게 하는 것은 그 청소년의 신앙고백을 판단하는 권한을 교회에게 부여함을 뜻한다. 이 권한은 그의 부모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교회 리더들은 그의 부모와 늘 상의해야 한다. 하지만 세례(또는 침례) 받은 자녀가 교회에 포함되는지 아니면 배제되는지에 대해서는 부모가 교회의 최종 결정에 따라야 한다. 열쇠의 권한을 지닌 자는 부모가 아니라 교회이다(마 16:18-19). 

이 모든 사실은 세례(또는 침례)를 주기 전에 신중해야 함을 뜻하는가? 그렇다! 

3) 세례(또는 침례)를 받았든 받지 않았든, 그들을 교회 안에서 누리는 세대간 교제의 풍성한 삶으로 이끌라 

서구의 기업들과 매스컴들은 청소년들을 소비자로 만들기 위한 마케팅에 매년 엄청난 돈을 쓴다. “얘들아, 너희들은 너희가 원하는 것을 너희 생각대로 즉시 얻을 수 있어.” 그래서, 오늘날의 청소년들은 그들을 성인 세계에서 함께 어울리게 하는 교회를 기피한다. 이들은 100년 전의 청소년들과는 다르다. 오늘날의 청소년들은 교회에서 그저 자기 나이 또래의 친구들과만 함께 시간을 보내기를 원한다. 

청소년 프로그램을 짤 때 당신은 이러한 본능을 매우 신중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소비자 중심주의는 이타적인 성숙함에 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든, 청소년들을 참된 제자로 만드는 최선의 방법은 그들을 교회 안에서 누리는 세대간 교제의 풍성한 삶 가운데로 끌어들이는 것임을 명심하라. 그들이 기독교가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전체 몸의 작용을 알 필요가 있다. 그들은 나이가 위인 사람이 아래인 사람을 제자로 삼고, 나이가 아래인 사람이 위인 사람에게서 배우는 것을 볼 필요가 있다(예, 딤전 5:1; 딛 2:2-6; 벧전 5:5). 

기독교의 길은 나이 많은 성도와 젊은 성도 간에 연합하는 길이다. 만일 당신의 청소년들이 이러한 길을 따르기를 원한다면, 그들에게 그 길을 보여주라. 

4) 청소년 사역을 할 수 있도록 부모들을 준비시키라 

성경은 마땅히 행할 길을 가도록 자녀를 훈련시킬 것을 청소년사역 목사가 아닌 부모들에게 명령한다(예, 엡 4:11; 6:4). 나는 청소년사역 목사들을 없애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청소년사역 목사들의 사역과 프로그램은 그리스도인 부모에게 성경에 불순종할 구실을 주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오히리ㅕ, 성경에 순종하는 부모의 역할을 장려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5) 이 시기를 복음 전할 기회로 활용하라 

교회 장로로서, 나는 멤버십 신청서를 일일이 다 읽는다. 따라서 우리 교회에 합류하는 사람들의 모든 간증들을 읽어 본다(이것은 내 심령에 큰 기쁨이 된다!). 부모가 그리스도인인지의 여부와 상관없이 많은 아이들이 중고등학생 때 믿음을 갖게 된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이 시기는 복음을 전하기에 적절한 때이다.

그러면 이것을 위해 실천적으로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나는 모른다. 하지만 무언가를 하라!

6) 1-5번의 내용을 어떤 프로그램에 적용하든, 이 성경적인 목표들에 인위적인 계획을 끼워 넣지 말라. 성경적인 목표들을 장려하라 

당신이 마련한 구조나 그룹들이 청소년들을 교회의 삶에 참여시키는 데 방해가 되거나 교회와 세상 간의 경계선을 흐리게 하지 않도록 유의하라. 동년배가 아니라 더 나이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제자로 삼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 모든 일들을 프로그램에 어떻게 적용할지에 대해 확신할 수 없지만, 브레인스토밍을 위한 여지는 어느 정도 있다고 본다. 수많은 부모들이 그리스도인 자녀가 대학에 들어가서 신앙을 버리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상황들에서 두 가지에 실패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내 추측이다. 하나는 제자화의 실패이며, 다른 하나는 세례(또는 침례)와 멤버십과 권징이라는 구조적인 문제에서 지혜를 행사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그러면 교회와 세상 간의 경계선을 분명히 긋고 복음전도에 나서도록 교회 청소년들을 도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좋은 제안들이 있다면 들려주길 바란다!

 

이 아티클은 개혁된실천사가 번역하여 제공한 것입니다. 유사한 자료를 위해 그들의 웹사이트를 방문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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