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삶

제자화 대상을 고를 때 고려해야 할 9가지 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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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2016

교회 멤버 두 사람을 상상해보라. 각자의 이름을 밥과 빌이라 하자. 밥은 성경을 열심히 공부한다. 그는 모든 일에 대해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알고 싶어 한다. 그는 삼위일체 교리에 대한 질문을 받아도 설명할 수 있다. 그의 행동 중 일부는 그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지 않는 것 같을 수도 있다. 사실, 그의 삶은 전혀 그리스도인답지 않다. 하지만 그는 성경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빌은 내색은 하지 않지만 성경을 많이 읽지 않는다. 그가 “선해지길” 원하는 건 분명하다. 그러나 빌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또는 교회가 무엇인지를 정통 교리대로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그리고 윤리적인 쟁점을 잘 설명하지도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보는 이기적이며 자아 중심적 삶과는 다르게 살고자 한다. 그는 자신을 성경이나 교리에 익숙한 사람이기보다 관계를 중시하는 사람으로 여기길 좋아한다. 

이들 중에 당신은 누구와 유사한가? 

밥은 사람들에게 더 관심을 가져야 하고, 빌은 진리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사실, 둘 다 예수님에게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 말씀의 진리와 하나님의 백성의 삶을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교회의 제자화 사역은 이들 두 부류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더 잘 따르도록 도와야 한다. 예수님은 이르시기를,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라고 하셨다(마 8:34). 밥은 자기를 부인하고 사람들을 더 많이 사랑함으로써 예수님을 따를 필요가 있다. 빌은 하나님의 말씀을 더 많이 사랑함으로써 그리해야 한다. 제자는 그리스도를 따르노라고 말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제자는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다. 

제자화에 대한 모든 대화가 바로 여기서 시작되어야 한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기억하는 것이다. 제자화란 예수님을 따르도록 다른 사람들을 돕는 것이다. 제자화는 상대방을 가르치고 바로잡고 본을 보이고 사랑하고 자신을 낮추고 상담하며 또한 영향을 미침으로써 영적 유익을 끼치는 것을 추구하는 관계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제자화를 수행할 것인가? 어떻게 밥이 자신의 믿음을 삶으로 실천하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할 것인가? 그리고 빌이 믿음을 이해하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도울 것인가? 

이것은 단지 목사들만을 위한 질문이 아니다. 성경은 우리 모두에게 이런 일을 맡긴다. 요한은 서로 사랑하라고 가르친다(요이 5절). 바울은 서로를 격려하며 서로를 세우라고 말한다(살전 5:11). 또한 모든 이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해지도록 서로를 가르칠 것을 당부한다(골 1:28). 히브리서 기자는 사랑과 선행을 서로 격려할 것을 당부한다(히 10:24). 

당신이 결정해야 할 첫 번째 문제는 누구랑 시간을 보낼 것인가이다. 당신이 회중 전체를 제자화할 수는 없다. 그러면 누구에게 시간을 투자할 것인지를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이와 관련하여 성경에서 제시하는 아홉 가지 고려 사항들은 다음과 같다. 이 순서를 따르면 좋을 것이다. 

1. 가족 

바울은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라고 말한다(딤전 5:8). 

성경은 여기서 그리고 다른 구절들에서, 우리 각자가 가족에게 특별한 책임이 있음을 가르친다. 가족을 통해, 하나님은 일평생의 관계를 그리고 사랑과 배려를 위한 자연적인 기반을 제공하신다. 이 자연적인 사랑과 책임은 가족을 그리스도께로 향하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가 가족과 함께 살 경우에는 특히 그렇다. 성경은 부모와 자녀 간에 혹은 배우자 서로 간에 특별한 책임을 부여한다. 이 관계들은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제자화 관계들이다.

2. 영적 상태 

당신은 비그리스도인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지만, 그들이 마치 그리스도인인 것처럼 그들을 제자화하는 건 적절치 않다. 바울은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라고 말한다(고전 2:14). 제자화의 대상은 그리스도인이다.

3. 교회 멤버십 

이 점에 대해서는 히브리서를 보라.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 주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히 13:7,17). 

분명 이 구절들은 교회의 리더들을 특별히 유의하도록 당부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제자화의 통상적 경로는 그 사람이 속한 교회의 관계적 상황 안에서 가장 잘 작동한다는 사실도 암시되어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회중에 대해 더 큰 책임이 있다. 그들을 도울 책임과 그들의 도움을 받을 책임이다. 같은 교회의 멤버들은 같은 장로단을 따르며 복종한다. 그들은 같은 신앙 선언(statement of faith)과 같은 교회 언약(church covenant)을 확언한다. 그들은 주된 문제와 부차적인 문제에 대해 같은 가르침을 받는다. 적어도 매주 서로를 본다. 이 모든 이유들로 인해, 같은 교회 내에서 제자화 관계를 세우는 것이 대체로 더 상책이다. 

더욱이, 만일 당신의 친구가 건강하지 않은 교회에 출석한다면, 당신은 그를 제자화함으로써 도리어 그의 영적 삶에 해를 끼칠 수도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역설적이게도 당신이 그를 영적으로 돕는 것 때문에 그가 성경을 가르치지 않는 교회에 계속 머무를 수도 있다. 이것이 절대적인 법칙은 아니지만, 당신의 제자더러 건강한 교회에 합류하도록 독려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필요로 하는 건 한 사람이 아니라 전체 몸인 교회이다.

4. 성별 

성경은 제자화에 있어 성별 문제에 민감하다. 예를 들어, 바울은 디도에게 이렇게 말한다. “늙은 여자로는…선한 것을 가르치는 자들이 되고 그들로 젊은 여자들을 교훈하되 그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 신중하며 순전하며 집안 일을 하며 선하며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게 하라.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딛 2:3-5). 

공적인 자리에서, 나는 남성들과 여성들을 가르친다.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는 부모가 있고, 형제자매나 배우자가 있는 이들도 많다. 말하자면, 가족 내에서는 이성도 제자화에 포함된다. 그리고 교회에서 우리는 남성들과 여성들 모두와 언약 관계에 있으며, 가족의 친구들도 만난다. 

그러나 통상적이며 의도적인 제자화 관계에서는, 남성은 남성을 그리고 여성은 여성을 제자화하는 것이 지혜롭다. 우리는 성별을 하나님이 주신 실체로 인식하며, 그것을 현실적으로 그리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다룬다. 우리는 교회에서 모두를 사랑해야 하지만, 동시에 그릇된 친밀함을 피해야 한다.

5. 연령 

성경은 성별에 민감한 것과 같이 연령에도 민감하다. 바로 앞에서 언급한 디도서 본문에서, 젊은 여자들은 늙은 여자들에게서 배운다. 또한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의 연소함이 업신여김 받는 것을 허용하지 말라고 말하는 동시에, 같은 편지에서 늙은이를 존중할 것을 당부한다(딤전 4:12; 5:1). 

보통 당신은 연배가 아래인 사람을 제자로 삼을 것이다. 그렇긴 해도, 성경은 젊은이가 연배가 위인 사람을 가르치는 예외적인 사례들로 가득하다. 나이가 더 많아지면서, 우리는 동년배로부터 그리고 심지어는 우리보다 더 젊은 사람들로부터도 겸손히 배우기를 원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를 가르칠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70대, 80대의 사람들로부터 배우듯이 20대, 30대의 친구들로부터도 많은 것을 배운다.

6. 당신과 다른 사람 

이 세상의 여러 범주들에 따라 서로 나누어진 사람들을 하나로 연합시키는 것만큼 복음의 힘을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것도 거의 없다. 에베소서는 “이는 그로(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한다(엡 2:18). 유대인과 이방인을 갈라놓았던 벽이 십자가에서 무너졌다. 

이제 이 나누어졌던 사람들의 연합을 통해 하나님의 지혜가 드러난다(엡 3:10). 인종적, 경제적, 교육적, 그리고 그밖의 다른 경계들을 뛰어넘는 교회의 연합은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함께 경배할 날을(계 7:9-10) 고대하게 한다. 

현실적으로는 어떠할까? 

제자로 삼을 누군가를 찾다보면, 중년의 엄마들끼리 친하게 지내고 젊은 부부들끼리 시간을 보내며 또한 독신 남자들끼리 어울림을 알게 된다. 이 그룹들은 공통점을 지니며, 하나님은 그들의 성장을 위해 이 공통점을 이용하신다. 

반면에, 당신이 대학생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거나 아이들이나 청소년들을 상대하거나 혹은 영국이나 브라질이나 한국에서 온 외국인들을 도움으로써 배울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라. 혹은 젊은 백인 남편이 나이 많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남편과 만남으로써 배울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하나님은 우리와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우리 자신에 대해 참으로 많은 것을 가르쳐주신다! 그리고 우리의 연합을 통해-단지 서로 좋아하는 연합이 아니라 서로로부터 배우는 연합을 통해-복음이 얼마나 잘 전시되는가!

7.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자세 

잠언은 가르침을 잘 듣는 아들을 거듭하여 칭찬하고 책망과 교훈과 조언을 멸시하는 어리석은 자를 배격한다. 또한 시편 기자는 하나님이 “온유한 자를 정의로 지도하심이여 온유한 자에게 그의 도를 가르치시리로다”라고 노래한다(시 25:9; 참조, 잠 11:2). 그러므로, 베드로는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라고 가르친다(벧전 5:5). 

당신은 당신에게서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또는 자신은 아무것도 배울 게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가르치느라 시간을 허비하고 싶진 않을 것이다. 가르침을 잘 듣는 사람을 가르치라. 그리고 당신 자신도 가르침을 잘 받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라.

8.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충성됨 

디모데에게 한 바울의 말을 기억하라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딤후 2:2). 

우리는 모든 이들을 제자로 삼길 원하며, 특히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제자로 삼을 자들을 제자로 삼길 원한다. 불가피하다면 우리가 여러 사람들을 제자로 삼겠지만, 정말 하고 싶은 것은 제자화를 연쇄적으로 확산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단지 다음 세대만을 멘토링하는 것이 아니라 다가올 모든 세대들에게로 이어지게 하려 한다.

9. 근접성과 스케줄 

끝으로, 성경은 시간과 우리의 분주한 스케줄에 민감하다. 바울은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라고 말한다(갈 6:10). 성경에는 시간을 최대한 선용할 것을 당부하는 구절들이 많이 있다(예, 엡 5:16). 

이 마지막 사항은 지혜의 문제이다. 그러나 대체로, 나는 당신의 스케줄에 맞는 사람들을 찾을 것을 권하고 싶다. 또한 당신의 주거지나 일터의 위치, 그리고 가정과 일터와 교회에서 보내는 시간을 고려해야 한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불가능한 일을 요구하시지 않는다. 

물론, 이 모든 일에서, 하나님은 우리가 할 선한 일을 미리 예비하신다(엡 2:10). 또한 선한 사마리아인의 경우에서처럼, 때로는 우리가 함께 시간을 보내려는 생각을 평소에 갖지 않았던 사람을 우리 앞에 두신다. 그 사람은 당신의 사무실에서 일하게 된 사람이거나, 또는 당신의 자녀와 같은 운동경기에 참여한 아이의 부모이거나, 혹은 같은 교회의 멤버일 수도 있다. 혹은 배우자와 사별하고서 당신을 의지하게 된 사람일 수도 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은, 함께 시간을 보낼 사람을 지혜롭게 그리고 심사숙고하여 정하되, 때로는 주님의 섭리가 우리의 모든 계획을 압도함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찬양하노니, 이런 점들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줄곧 의지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들을 두루 고려하여 결정하라 

밥과 빌을 기억하는가? 당신의 스케줄이 그들 중 한 명과만 시간을 보내도록 허용한다고 가정하자. 당신은 누구를 택하는가? 분명 당신은 이 선택을 놓고서 기도해야 하지만, 반드시 바른 답이 있는 건 아니다. 당신은 두 사람 모두와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한다고 해서 죄책감을 느껴서는 안 된다. 당신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도록 그리스도의 몸이 있지 않은가! 

당신의 스케줄이 밥의 일 스케줄에 더 맞거나 그가 당신의 이웃에 살거나 혹은 아내들끼리 이미 친한 친구이기 때문에, 당신은 밥과 함께 시간을 보낼 것을 택할 수 있다. 혹은 빌이 내년 여름에 콜롬비아의 보고타로 돌아갈 것인데 그가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는 일에 관심을 보이고 보고타에서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는 일을 위해 그를 준비시키기를 당신이 원하기 때문에, 당신은 그에게 시간을 집중투자하기로 결정할 수도 있다. 

이 모든 일에 있어, 제자화 대상을 한 사람으로 정하든 네 사람으로 정하든, 먼저 당신 자신이 영적으로 성장해야 하며, 그런 다음에 주변 사람들의 성장을 도와주어야 한다. 이들 두 가지가 다 중요하며, 이들 중 하나가 다른 하나에 도움이 된다.

편집자 주: 이 아티클은 Mark Dever의 신간 도서 Discipling: How to Help Others Follow Jesus (Crossway, 2016)에서 발췌하여 개작한 것이다. Used with permission.

 

이 아티클은 개혁된실천사가 번역하여 제공한 것입니다. 유사한 자료를 위해 그들의 웹사이트를 방문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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