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신학과 복음 선언
강해설교가 일관되게 복음전도적일 수 있을까? 때로는 설교자들이 성경의 책들을 강해하기를 꺼린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 접근법이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신학을 가르치기에는 좋지만 복음을 이해하도록 불신자들을 돕는 데에는 좋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목사들이 구약성경에 대한 설교를 구상할 때 이런 생각을 점점 더 많이 하게 된다. 아브라함의 삶이나 학개서에 나오는 이야기를 매주 공부함으로써 복음을 명확히 드러낼 수 있을까? […]
복음이란 무엇인가?
최근에 복음주의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어떻게 규정해야 하는지를 놓고서 많은 논의가 있어 왔다. 우리가 복음을 죄인들이 회개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 메시지로 이해하든, 아니면 더 넓은 의미로 이해하든, 어쨌든 그런 논의가 진행되어 왔다. 때로는 두 진영 간에 의견이 대립되는 양상을 보였다. 한편에서는 상대 진영이 복음에 대해 “환원주의적임”을 […]
번영복음의 다섯 가지 오류
100여 년 전에, 당시 가장 큰 교회에서 설교했던 찰스 스펄전은 이렇게 말했다. 그리스도인이 재산 축적을 목표로 삼는 것은 반기독교적이며 악한 삶이라고 나는 믿습니다. 여러분은 “우리는 가능한 한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 기울여야 하지 않습니까?”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렇게 살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여러분이 하나님의 일을 할 수도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나도 동의합니다. […]
번영복음 추종자들에게 복음 전하기
어느 화창한 겨울 아침에, 나는 자주 가는 커피숍에 앉아 성경과 신문을 읽고 있었다. 내 테이블을 지나가던 한 사람이 내가 성경을 읽고 있는 것을 보고서 대화를 걸어 왔다. 그는 우리 지역에 있는 어느 대형 교회의(번영복음을 설교하는 교회였다) 멤버였으며, 그는 성경이 우리를 축복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를 주로 담고 있다고 믿었다. 나는 하나님이 누구신지, 우리가 어떤 자인지, 그리고 하나님이 […]
번영복음 교회의 아홉 가지 표지
당신은 번영복음 교회를 어떻게 판단하는가? 나는 그리스도를 영접한 이후의 처음 9년 동안 번영복음의 환경 속에서 지냈고, 그 후에 2년 동안 신학교에 있었으며, 그 다음 6년 동안 도회지에서 목회를 해 왔다. 내 경우에는, 건강한 교회의 아홉 가지 표지가 번영복음을 가르치는 교회들을 포함하여 온갖 교회들을 판단하는 유용한 가늠자 역할을 한다. 번영복음 교회는 아홉 가지 표지들에 반대된다. 다음의 […]
제단 초청 없는 복음전도
몇 년 전에 나는 ‘마운트버논 침례교회’의 목사로서 첫 설교를 했다. 예배 전에 음악 목사가 내게 질문했다. 제단 초청(예배당 앞으로 나오게 해서 결신을 하게 하는 복음전도 방식-번역주)을 어떻게 할 건지를 알고 싶다고 했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그 주일 아침 이전에도 나는 그 교회에 세 차례 왔었지만 제단 초청을 하는 사람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나는 이 교회가 […]
멤버를 대상으로 한 회심 사역
가장 확실한 복음전도 기회들 중 하나는 교회 멤버들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이미 그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 우리는 이미 그들에게 줄곧 복음을 전하는 유리한 위치에 있다. 우리는 그들을 개인적으로 그리스도께 인도할 수 있는, 하나님이 작정하신 기회들도 지니고 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에게 경고하기를, 사나운 이리가 그들 가운데 들어와서 양떼에게 큰 해를 끼치려 할 것이라고 했다(행 20:29). […]
회심, 하나님, 그리고 전체 자아(the whole self)
창세기로부터 계시록까지, 성경은 구원을 경험하며 하나님을 알기 위해 회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분명히 밝힌다. 만일 우리가 죄로부터 하나님께로 돌이키지 않으면, 영적이며 초자연적인 마음의 할례라고 성경에서 묘사하는 것을(신 30:6; 롬 2:25-29) 체험적으로 알지 못하면, 우리는 구원의 하나님을 알지 못하며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 아래에 놓일 것이다(엡 2:1-3). 톰 슈라이너가 이 ‘9Marks 저널’에 실은 두 아티클에서 논증했듯이, 성경 전반에 […]
적정한 회심 교리의 과소평가된 목회적인 힘
올바른 회심 교리는 당신에게 목회적인 힘을 줄 것이다. 개인적 사례 예를 하나 들고서 시작하자. 언젠가 나는 나의 잘못된 욕구를 내 친구에게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설명하기를, 나의 신학은 그것이 잘못임을 알지만, 내 자신의 일부는 그것을 정당화하려는 유혹을 받으며 마치 “그 욕구가 내 인격의 본질에 얽혀 있어서 그것이 마치 내 영혼 자체의 일부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나는 나의 욕구가 […]
“믿기 전에 소속되는 것”이 교회를 어떻게 재정의하는가
현대 세계의 위대한 통찰들 중의 하나는 존 돈이 옳았고 사이먼 앤 가펑클은 틀렸다는 것이다: 나는 바위가 아니고 섬도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나”라는 존재로부터 인생과 우주에 대한 나의 믿음에 이르기까지, 나의 신념들은 사회적으로 형성되었다. 이는 내가 독자적인 결정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내가 살고 있는 사회적 배경이 내가 취할 수 있는 선택의 범위를 주로 결정한다는 […]
